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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만화에 관한 추억 한두 개 정도는 모두가 가지고 있다. 코흘리개들이 부모 눈치 보며 드나들던 만홧가게의 모습도 있고, 껄렁한 청소년들이 라면 먹고 담배 피우던 칙칙한 만화방의 풍경도 있다. 교실 한 바퀴 돌아야 수명이 끝나던 월간 만화잡지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교육의 미련을 못 버린 엄마가 방을 채워준 ‘만화로 배우는…’유의 책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도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만화 한 번 안 보고 자란 사람은 없다.

 

이제 웹툰을 본다. 웹(web)을 통해 만화(카툰)를 본다고 해서 웹툰이지만, 내용도 형식도 소비방식도 과거의 만화와는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도 보지만 어른들도 좋아한다. 일상툰을 보며 피식피식 웃는 대학생들도 많아지고, <미생>에 열광했던 직장인들은 작가와 함께 늙어가는 중이다. 주요 플랫폼에 연재 중인 웹툰만 해도 2000편이 넘고, 매일 300편 이상의 새 만화가 웹에 떠오른다. 작가의 수는 4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웹툰이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신과 함께> <강철비> <내부자들> <은밀하게 위대하게> 같은 영화나 <치즈 인 더 트랩> <미생> <송곳> <동네변호사 조들호>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모두 웹툰을 각색한 작품들이다.

 

웹툰 전성시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만화산업 매출액은 전년보다 6.3% 증가해 총 1조원을 넘어섰다. 연 수출액도 40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최근 10여년 동안의 급성장을 목격하면서, 산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급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웹툰을 주제로 다룬 두 건의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4월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세계웹툰포럼’을 개최해서 한국 웹툰의 미래를 전망했고, 이틀 전에는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학에서 각국의 학자들이 모여 웹툰 기반 트랜스미디어의 미래 전망을 토론했다. <이끼>와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두 행사 모두의 기조연설을 맡기도 했다.

 

왜 웹툰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웹툰은 현대 대중문화의 핵심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며 짧게 즐기는 모바일 문화, 스낵 문화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동시에 가벼움과 찰나성이 축적되어 영화 같은 긴 호흡의 전통 미디어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트랜스미디어 현상이다. 웹과 앱 기반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수용자가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 세계 정반대 편에서도 쉽고 빠르게 접근 가능하다는 점도 있다. 전 지구적 미디어 환경의 소산이다. 생산과정도 현대사회의 단면들을 모두 조금씩 가지고 있다. 누구든 열의와 능력이 있으면 경쟁에 뛰어들 수 있지만 결코 성공의 기회는 크지 않고, 경쟁과 실패의 두려움은 웹툰작가 지망생들을 움츠리게 만든다.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하더라도, 생존에 대한 스트레스와 잦은 병치레에 쉬이 지치기도 한다. 불공정 계약이나 젠더감각의 부재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가장 전형적이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대중문화 형식이 될 수 있는 웹툰. 그러나 많은 이들이 기대하듯 웹툰이 K팝에 이은 새로운 한류의 주역이 되거나 차세대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장의 전문가들도, 학자들도 쉬이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는 듯하다. 현실적으로는 수출을 위한 현지화 비용이 너무 크고, 문화적 장벽도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웹툰의 미묘한 대사들을 제대로 옮기려면 번역비가 너무 많이 들고, 70컷짜리 한국 웹툰은 숨차서 못 보겠다는 외국 독자들이 근거로 소환된다. 하지만 체계적인 기획 시스템의 정착이나 드라마, 가요의 예기치 못했던 성공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웹툰의 성장을 가능케 만드는 본질적인 동력이 고품질 창작자들의 끊임없는 충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만화를 그리며 즐거워하던 ‘예술가형 작가’가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주문제조업 노동자’가 되어 성인물을 그리는 현실, 심혈을 기울여 발표한 작품이 불법복제되어 연 1600억원이라는 엄청난 피해액을 만드는 현실은 (예비)작가들의 기운을 빠지게 하고 웹툰의 경제적, 문화적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만약 한국 웹툰이 근미래에 세계 대중문화의 지배자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관련 정책은 “작가들이 신이 나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미디어 간의 왕래가 빨라지고 문화 간의 국경이 낮아지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 역동적인 상황에서 문화산업 장내의 생산자 및 문화매개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듯하다. 진지한 연구도 필요하다. 우왕좌왕하다가 드라마도 게임도 과거의 영화를 잃어가고 있다. 웹툰이 같은 경로를 밟지는 않기를 기대한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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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