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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지난주에 종영한 tvN의 <비밀의 숲>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구성과 대사, 연출과 연기 모두 빼어났다. 지난 10년간 방영된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틀어 아마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모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웰메이드’ 영화나 드라마가 찬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예민한 동시대의 정서 한구석을 찌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사 한마디일 수도, 아름다운 영상일 수도 있겠으나, 때로는 현란한 액션이나 장엄한 스펙터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나 드라마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시대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비밀의 숲>은 2017년 한국 사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정의의 승리’나 ‘법(집행)의 가치’ 같은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비밀의 숲>의 의미는 텍스트의 안보다 바깥에서 찾기 시작해야 옳다. 먼저 이 드라마는 지상파 방송사의 몰락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2012년 JTBC의 <아내의 자격>이나 2013년 tvN의 <나인>이 제작·방영될 때만 해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뉴케드(새로운 케이블 드라마)’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좋은 드라마’는 케이블이 만든다는 믿음까지 생겼다. KBS, MBC, SBS가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는 드라마를 다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 드라마만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 경영진은 과연 위기의식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비밀의 숲>은 능력만 있다면 배경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시대적 변화상도 보여준다. 극본을 쓴 이수연 작가는 이전에 단막극 한 번 쓰지 않았던 신인이다.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드라마 습작을 해왔다고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 구성작가 출신이다. 둘 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엘리트 작가코스’를 밟지 않은 셈이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가능하다. 소설가의 문학적 베이스에 웹툰 작가의 재기, 기자의 취재력, 무엇보다도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시청자와의) 소통 능력을 갖추었다면 말이다. 간판과 스펙이 성공을 결정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를 기대한다.

 

<비밀의 숲>은 완전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시청자의 피드백을 반영하며 미세조정을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특성상 완전 사전제작은 위험하다는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정설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하나, <비밀의 숲>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한 독점 공급권을 주는 조건으로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로부터 36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당 20만달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방 한 시간 후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비밀의 숲>을 시청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5000만달러를 투자하고 극장·넷플릭스 동시개봉을 결정한 사실은 크게 화제가 되었으나 <비밀의 숲> 사례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 드라마 판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방송 콘텐츠 산업의 지형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중문화산업계는 과연 적절한 대비를 하고 있는 걸까?

 

텍스트 내적인 의미도 결코 작지 않다. 주인공 황시목이 어릴 적 머리 수술로 인해 감정을 잃었기 때문에 비로소 ‘훌륭한’ 검사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사뭇 역설적이다. 감정이 없어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니! 이 히어로 로봇 검사를 살짝 미소짓게 만든 한여진 경위도 (황시목과는 달리) 아무런 사적 정보도 제공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서적 투사를 하기 매우 어려운 캐릭터이다. 출연진 중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이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셈이다. 비밀의 숲의 열쇠를 쥐고 있던 유재명 수석의 투신자살은 “누군가 죽어야 해결되는”, 혹은 “누군가 죽어도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편린을 보여준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던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크게 바뀌지 않은 현실도.

 

마지막으로, <비밀의 숲>은 학자와 비평가들에게도 질문을 하나 던진다. 소설과 시,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영화는 진지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인데, 텔레비전 드라마는 언제나 미학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게임 콘텐츠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소비하는 문화 텍스트이다. 비평의 장이 확대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드라마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도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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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