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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몇 명의 음악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한 사람이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대중가요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곡은 뭔가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 조용필의 ‘바운스’, 아이유의 ‘좋은 날’, 엑소의 ‘으르렁’, 이승철의 ‘마이 러브’, 소유와 정기고의 ‘썸’ 등 제법 많은 곡들이 거론됐다. 누군가가 “그럼 그중 다시 듣고 싶은 노래는?”하고 묻자 곡 숫자는 확 줄었고 다시 그가 “후대에 남을 곡은 뭐죠?”라고 했을 때는 모두들 ‘글쎄’하면서 “생각해보니 정말 곡이 없네!”하고 혀를 찼다. 


사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떤 곡이 후대에 기억될지, 역사에 남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나의 노래가 전설의 위상에 오르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대중들의 인지도가 있어야 하고 예술성, 화제성,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 전문가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동료 혹은 이후 세대 음악가들에 대한 영향력도 중요하다. 당대에 크게 히트했다고 명곡으로 남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예술적으로 뛰어나도 극소수만 아는 곡은 배제를 당하고 시대정신을 담은 곡이라도 음악성이 떨어지면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 출처 : 경향신문 DB 



발표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후배 가수들이 자꾸 불러 현재시제를 확보한 곡은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는 이수영의 리메이크 히트로 다음 세대에게도 친숙해졌고 최근 아이유가 김창완과 함께 부른 산울림 왕년의 곡 ‘너의 의미’는 지금 음악인구와의 접점을 마련하면서 더욱 생명력을 높였다.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 있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하나 이상의 결정적인 곡을 보유하고 있다. 


신중현 하면 ‘미인’, ‘아름다운 강산’이고, 가왕 조용필은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등 지금도 팬들 기억에 확실히 자리한 대표곡들이 수두룩하다. 존 레넌은 ‘이매진’과 직결되고 이글스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노래한 ‘호텔 캘리포니아’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굿 바이브레이션스’를 만들고 나서 “신이시여, 정말 제가 이 곡을 만들었나이까?”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중음악가에게 명곡은 명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곡 하나가 새로운 기원과 흐름을 만든 사례도 많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핫브레이크 호텔’과 함께 어른 주도에 종지부를 찍은 청춘의 로큰롤 시대가 활짝 열렸고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는 대중음악가들로 하여금 고전음악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으로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1970년대 후반, 영국의 섹스 피스톨스는 무정부 상태를 갈망한 ‘아나키 인 더 UK’라는 곡으로 음악적 포스트모던의 탄생을 알렸다. 이 때문에 음악관계자들은 판세의 전환을 위해서는 확실한 곡 하나가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예로 들면 누구나 이 말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한 국악 밴드의 리더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한 음반사 간부를 만났다. 그와 대화 도중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느냐고 의견을 구했더니 그는 1초의 주저함이 없이 “원 그레이트 송!” 즉 좋은 곡 하나면 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앨범이 아니라 디지털 싱글이 대세다. 단 한 곡이 중요해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엄청난 수의 싱글들이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곡, 다시 듣고 싶은 곡, 후대에 남을 곡은 별로 없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한철도 아닌 며칠 장사의 풍조에 함몰되어버린 탓이다. 이러니 대중음악을 누가 예술이라고 치장해주겠는가. 서둘러 판세를 바꾸기 위해 작곡자와 제작자는 하나의 좋은 곡 생산을 위해 더 땀을 흘리고 소비자들도 피로감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양질의 곡에는 기꺼이 응답하는 수고가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릴 찰나의 곡들만이 판치는 이 허한 현실을 바꿀 길이 없다. 국면을 전환시킬 ‘원 그레이트 송’을 기대한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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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