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죽은 지 18년이 흐른 김광석의 음악은 거대한 ‘힐링’의 소리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생전보다 오히려 고인이 되고나서 위상의 덩치가 더 불어나는 느낌이다. 그의 삶과 음악을 조명하는 창작 뮤지컬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앙코르 요청 속에 시즌2에 돌입했고 <디셈버> 또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언론도 지속적으로 김광석 재조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히 사후 열풍이다.

 

현재의 어떤 인기가수보다 막강한 티켓 파워를 발휘하고 1990년대생들도 마니아로 만들어버리는 망자 김광석의 힘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아련한 추억을 부르면서 동시에 실제 삶에 밀착시키는 노래, 그 레알 음악 때문이다. 듣는 자가 누구든 3인칭인 음악을 1인칭 독백으로, ‘마치 내가 읊조리는’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은 김광석 노래가 누리는 특권이다. 생전의 김광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10대들에게 물었더니 노랫말이 명료하게 들리는 것부터 요즘 음악하고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 끌린다고 한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시스템 훈육의 결과인 아이돌 댄스음악이나 때로 과장된 인디 음악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온기와 습기, 그 인간적 생동감을 가리킨다.

 

1987년 우리 곁을 떠난 비운의 음악천재 유재하도 마찬가지다. 약간 느슨했던 CD 사운드가 아닌 LP 시절의 찰지고 선명한 사운드를 되찾은 고음질 LP가 막 출시됐다. 제작사는 한정판으로 1000장을 찍었지만 예약 주문 물량은 그보다 훨씬 많다. 단 한 장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어도 ‘지난날’ ‘사랑하기 때문에’ 등 유작에 수록된 모든 곡이 후대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며 지금도 막대한 흡수력을 자랑한다.

 

너무 많은 음악 아이디어를 숨겨놔 한 작곡가는 “들을 때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고, 작사·작곡을 넘어 편곡까지 혼자서 해낸 음악적 자주(自主)의 실현에 많은 음악가들이 숭배 마인드를 공유한다. 발라드의 최강자 신승훈은 “유재하의 앨범이 없었다면 당연히 나도 없다. 그를 운명으로 느끼고 음악을 해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타블로가 이끈 그룹 ‘에픽하이’도 유재하의 기일 11월1일을 제목으로 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래서 유재하의 이름을 모르는 에픽하이의 팬들은 거의 없다.

 

고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출처 :경향DB)

 

3년 뒤 11월1일 같은 날, 김현식도 세상을 떠났다. 망자가 된 지 23년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등 발라드 보석들은 꾸준히 전파를 타고 후배가수들에 의해 다투어 불린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혼을 불사른 그의 자세에서 가수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김장훈은 김현식에게서 천하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이크 앞에서 경건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땅 위에 가왕 조용필이 있었다면 땅 밑(언더그라운드)에는 가객 김현식이 있었다!”는 말처럼 대중음악의 역사는 그를 1980년대에 언더그라운드 음악문화를 개척한 인물로 길이길이 보전한다. 그 시절 김현식이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어도 음악 수요자들 사이에 강자로 떠오른 이유는 그의 음악이 텔레비전을 통해 흘러나온 주류의 음악과는 감정선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운드가 범람하는 지금은 더더욱 김현식의 아날로그 노래들이 각별하게 들린다. 지난해에는 미공개 음반이 나와 다시금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근래처럼 사자(死者)들의 음악이 환영을 받은 때도 없다. 고인의 음악을 기리고 되돌아보는 것은 먼저 우리 대중음악이 충분한 역사를 쌓았다는 방증이겠지만 거기에는 다양함으로 향하는 시대적 요청도 작용한다고 본다. 그들의 잇단 부활에는 음악이 뛰어나다는 것과 함께 근래의 음악과 다르다는 것이 한몫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음악은 다른 것이 많아야 한다. 그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죽은 가수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불러낼 필요가 있다.

 

 

임진모 | 대중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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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