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국내에서도 방영한 드라마 <뿌리> 덕분에 국내 기성세대들에게 가장 친숙한 흑인의 이름은 ‘쿤타 킨테’일 것이다. 당시 얼굴이 조금만 까무잡잡해도 그에게는 자동으로 쿤타 킨테라는 별명이 붙곤 했다. 알렉스 헤일리의 동명 소설에서 쿤타 킨테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왔지만 노예 이름을 거부하고 백인지배 사회의 흑인에 대한 혹독한 억압과 차별을 견디면서 ‘아프로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지키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인종문제가 잠잠한 듯한 상황에서 미국의 힙합 뮤지션 켄드릭 라마는 지난해 ‘킹 쿤타’라는 노래로 오랜만에 쿤타 킨테를 소환해 민감한 인종 불평등 문제를 끄집어냈다. 이 곡이 수록된 켄드릭 라마의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는 힙합을 중심으로 펑크, 재즈 등을 화학적으로 교배해 음악 예술성의 개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앨범에 음악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흑인에 대한 경찰의 총격, 흑인부자에 대한 부당한 조세, 빈민가 흑인의 고통 대물림 등 엄존하는 흑인차별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적나라하게 부각했기 때문이었다.

팝 음악관계자들은 ‘안팎이 처절하게 검은’ 이 앨범이 나온 5월에 “연말까지 갈 것 없이 올해의 앨범은 이미 정해졌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음반의 한 수록 곡을 2015년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지난 16일 개최된 58회 그래미상에서 11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본상 가운데 하나인 ‘올해의 앨범’ 부문 트로피를 받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했고 최고의 인기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여기에 시비를 걸 건 없지만 그래미가 ‘대세’ 앨범을 애써 외면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음악계 한편에서는 백인과 중진들이 다수 포진한 그래미 심사위원 구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고 그래미가 ‘흑인에 의한 흑인차별 문제제기’를 혐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만약 흑인차별 문제를 백인 가수가 주제화해 훌륭한 음악에 담아내고 언론의 좋은 평판을 받았다면 그래미가 과연 등을 돌렸을까?




60년 이력에 다다른 그래미는 사실 역사적으로 흑백을 떠나 ‘사회참여’ ‘현실비판’ 음악은 홀대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오로지 예술성이 중심이었다. 거칠게 말하면 ‘음악만 잘하면 됐지 무슨 사회문제야?’하는 식이다. 이번 켄드릭 라마의 수상 실패는 그래미의 반(反)흑인, 반청춘, 반사회성이라는 기조를 재확인해주며, 그래미상이 다양한 음악 흐름에 관한 한 더 이상 ‘길’이 아니라 ‘벽’임을 드러냈다. 과거에 사로잡혀 새로운 미디어와 트렌드에 대한 방향감각이 전혀 없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됐다.

그래미상 시상식 이상으로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결승전의 하프타임 공연에서 논란을 부른 비욘세 공연도 다를 바 없다. 흑인여가수 비욘세가 무대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공격적으로 노출한 신곡 ‘포메이션’을 검은 옷과 베레모 차림의 흑인 댄서들과 춤을 추면서 노래하자 보수 세력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검은 옷과 베레모는 과거 1960년대에 미국 백인들이 끔찍하게 기억하는 흑인의 무장단체 ‘흑표당(블랙 팬서 파티)’ 제복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슈퍼볼은 경기장이지 연설장이 아니다”라며 비욘세의 정치성에 맹공을 퍼부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비욘세 반대집회를 위해 NFL 빌딩으로 모이자”는 선동의 메시지가 등장했다.

대중음악은 퓨전이다, 크로스오버다 해서 어떤 분야보다 인종 화합에 전심전력해왔고, 백인가수 중 상당수가 대중음악의 뿌리인 흑인음악을 구사해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켄드릭 라마와 비욘세 사건이 웅변하듯 ‘아프로 아메리칸’에 대한 백인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살아 있다. 흑인가수 샘 쿡은 1965년에 발표한 ‘바뀔 거야(A change is gonna come)’라는 노래로 변화에 대한 신념을 역설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소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흑인이 반항하면 억누르려 한다. 대중음악이 ‘저항’의 기치를 내걸 이유는 많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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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