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터스. 60년대 흑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큰롤은 몰락했지만, 그것이 흑인 음악의 몰락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흑인 음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엘비스는 로큰롤의 폭발을 이끌었지만, 전술했듯이 그것은 엘비스와 같은 ‘백인’ 이 흑인 음악을 연주했다는 점에서도 힘을 얻은 바 컸다. 즉, 로큰롤은 흑인 음악에서 시작했을지언정, 순수 흑인 음악은 아닌 셈이다. 물론, 1940년대 이후 흑인 음악의 ‘수퍼 장르’ 는 누가 뭐래도 리듬 앤 블루스일 것이다(또는 그로 ‘통칭된다’). 하지만 흑인 음악을 리듬 앤 블루스가 모두 아우르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로큰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스타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블루스에서 시작했던 로큰롤이 주목받았다는 사실은 곧 흑인 음악의 주목을 의미했다. 흑인 음악이 양지로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큰롤이 청년 반문화 운동을 대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흑인 민권 운동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소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소울도 폭넓은 용어이지만, 통상적으로는 리듬 앤 블루스와 가스펠의 결합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어떤 시각에서는 1950년대 이전에 이미 로큰롤을 구사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 ‘샤우터(shouter)’ 이기도 했던 레이 찰스(Ray Charles)나 샘 쿡(Sam Cooke)을 그 선구라고 할 수 있을 소울은 흑인 음악 전문 레이블이었던(흑인 음악의 ‘저항 음악’ 으로서의 입지를 생각하면, 일종의 백인 사회에서의 돌파구라고도 할 수 있을) 디트로이트의 모타운(Motown)과 멤피스의 스택스(Stax), 뉴욕의 아틀랜틱(Atlantic)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리 웩슬러가 발굴했던 레이 찰스가 아틀랜틱을 대표하는 뮤지션이었고, 그는 가스펠과 블루스는 물론 재즈, 소울의 특성을 혼합시켜 ‘What I'd Say’, ‘I Got a Woman’ 과 같은 많은 히트곡을 양산해 냈다.

Ray Charles - I Got a Woman

흑인 프로듀서 배리 고디(Barry Gordy)가 제너럴 모터스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모타운을 세운 것은 1959년이었다.

모타운이라는 말은 모터 타운, 즉 디트로이트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즈(Smokey Robinson and the Miracles), 수프림스(Supremes - 아
마도 영화 ‘드림걸스’ 로 현재는 더 친숙할), 템테이션스(Temptations) 등은 곧 모타운을 반석 위에 올려 놓았고, 에디 홀랜드-브라이언 홀랜드-라몬트 도지어라는(H-D-H, 즉 홀랜드-도지어-홀랜드라고 불렸다) 작곡 트리오는 모타운을 최고의 흑인 음악 레이블로 이끌었다. 10년 만에 100곡이 넘는 넘버 원 히트곡을 차트에 등장시킨 모타운은 또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마빈 게이(Marvin Gaye)를 등장시킨 곳이며, 잭슨 파이브(Jackson 5) - 마이클 잭슨과 자넷 잭슨이 있었던 바로 그 그룹 - 까지 많은 스타들이 데뷔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리 고디가 순수한 흑인 음악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배리가 의도했던 것은 백인에게 장사가 되는 리듬 앤 블루스였고, 흑인만이 아닌 최대한 넓은 수용자층을 만들기 위한 음악이었다. 물론 이런 면이 록 음악에 분명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라디오에서 모타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백인’ 젊은이들도 모타운의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좀 더 ‘순수한’ 흑인 음악에 가까웠던 것은 모타운보다는 스택스였다.

짐 스튜어트(Jim Stuart)와 에스텔 액스튼(Estelle Axton)이 1960년에 세웠던 스택스는 좀 더 정통적인 블루스와 가스펠 형태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배리 고디에 비해 별로 돈 벌 생각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H-D-H에 의해 양산되는 히트곡을 내세웠던 모타운에 비해 스택스의 곡들은 좀 더 즉흥적 성향이 강했고, 사실 스택스가 모타운보다 어렵게 성장해 나갔던 점에는 이런 부분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를 훵키한 리듬에 담아냈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이 스택스를 지탱해 주었고, 그 외에도 앨버트 킹(Albert King), 뒤에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과 함께 강력한 훵크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자니 테일러(Johnnie Taylor)등이 스택스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었다. 스택스는 1975년에 해체되지만, 리듬 앤 블루스가 훵크(Funk, 펑크Punk와 구별하기 위해 앞으로 ‘훵크’ 라고 표기한다) 음악으로 진화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스택스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Otis Redding -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소울의 선구자임은 물론이고, 훵크의 출현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뮤지션에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이름이
처음으로 꼽혀야 할 것이다.


리틀 리처드보다도 먼저 음악 활동을 했던 브라운은 1956년 ‘Please Please Please’ 로 데뷔하여, 특유의 타이트한 사운드로 훵크의 모습을 제시하였고, (사실 ‘America is my Home’ 같은 곡과는 매우 이질적이지만)1968년의 역사적인 싱글 ‘(Say It Loud)I'm Black and I'm Proud’(제목만 보아도 너무나 블랙 파워를 고무시킬) 을 통해 흑인 공민권 운동의 전위에 서기도 했으며, 부치 콜린스(Bootsy Collins)라는 걸출한 훵크 베이시스트를 포함한 백 밴드 JB's 와 함께 발표한 ‘Sex Machine’ 는 훵크의 완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브라운은 “The Payback” 앨범 이후에는 상업적으로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나, 영화 ‘록키 4’ 에 삽입된 ‘Living in America’ 의 빅 히트와 80년대부터의 흑인 랩 가수들의 샘플링을 통해서 그의 음악의 여전한 생명력을 확인하였다. (물론 브라운은 자신의 음악의 샘플링을 - 특히나 과격한 가사의 힙합 음악에서 - 좋아하지 않았지만)

조지 클린턴은 팔러먼츠(Parliaments)와 훵카델릭(Funkadelic) 등에서의 활동으로 훵크의 신이라는 칭호까지 듣는 뮤지션이다. 팔러먼츠의 래리 그레이엄(Larry Graham)은 그야말로 ‘스트리트 훵크’ 의 효시로서, 베이스가 배경에 깔린 리듬 악기만이 아니라 곡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려 주었고, 훵카델릭은 “Maggot Brain” 이나 “Funkadelic” 같은 앨범에서 클린턴이 확립한 훵크와 사이키델릭이 조합된 개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James Brown - Say It Loud, I'm Black and I'm Proud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