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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인 1985년 가수 김완선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머리끈을 풀고, 출렁이며 춤을 추고 종횡으로 무대를 누비는 와일드함에 ‘한국에도 이런 가수가 있었어?’ 하며 넋을 잃었다. 너무나 새로운 춤 자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김완선의 섹시 댄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점잖음과 엄숙을 지고로 여기던 시절에 대한 조롱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사회적 맥락의 의미가 더해졌다. 관습 흔들기, 판 뒤엎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김완선은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김완선 이전에 ‘빙글빙글’의 나미, 더 거슬러 올라가 1969년의 김추자 역시 마찬가지다. 김추자의 경우는 경제개발계획이 한창이던 시절, 가당찮게 여가수 최초로 무대에서 엉덩이를 흔드는 파격을 보였다. 이런 원조들과 김완선을 거쳐 섹시 여가수의 계보는 엄정화, 이효리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의 존재가 역사에 기억되는 이유는 춤을 통한 아름다움의 구현도 있지만 기성과 다른 참신함 혹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댄스에다 섹슈얼리티가 더해진 이른바 섹시 콘셉트가 여기서 폭발력을 갖는다. 이 부문의 세계적인 인물은 마돈나다. 마돈나는 오랫동안 눌려왔던 여성들의 자기표현과 자기결정력을 과감한 노출과 관능이라는 섹슈얼리티 수법으로 이끌어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대표작인 ‘처녀처럼’(Like a virgin)과 ‘아빠 설교하지 마세요’(Papa don’t preach)는 결코 대중적 파괴력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구 벗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당대의 관습에 덤벼드는 문제의식과 오버랩시켰기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마돈나의 노래는 답답한 현실에 눌린 10대와 20대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선언 같은 것이었고 실제로 언론으로부터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걸그룹 씨스타의 효린과 보라가 대중들에게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요즘 걸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주류 음악계 여가수를 보자. 몇몇을 빼놓고는 마치 ‘누가 더 센가?’ 겨루듯 질펀하게 섹시 콩쿠르, 관능성 높이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너무 아찔하고 자극적이다. 아슬아슬한 자태와 야릇한 퍼포먼스는 기본이고 언어도 거침이 없다. 인기 최고의 걸그룹 ‘씨스타’는 ‘터치 마이 바디’란 노래에서 ‘내 입술이 좋아 아님 내 바디가 좋아/ 솔직히 말해 여기 여기 여기 아님 저기 저기 저기…’라고 유혹한다. 대놓고 100% 섹시를 표방하는 걸그룹 ‘포미닛’ 출신의 현아가 얼마 전 히트시킨 곡 ‘빨개요’는 정말 사람들의 얼굴을 빨갛게 만든다. ‘다 그만해 따끔하게 혼내줄 테니까 엉덩이 대/ 감당 안돼 밤마다…’ 근래 댄스곡의 대세는 스스로에게 권좌를 부여하는 이러한 식의 자화자찬이다. 이런 내용의 가사가 야릇한 춤과 자태의 영상과 결합하니 더 요란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충격이어야 할 이러한 섹시 펀치가 순간 눈을 때릴지는 몰라도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과감한 춤과 언어에 설득되거나 용기를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제는 청소년들마저 ‘대체 이게 뭐야?’라며 실소한다. 1980년대에 서구의 10대들이 마돈나로부터 여성 존재감 상승을 수혈받은 사례는 남의 나라 얘기고 오래전 일일 뿐이다.

그룹마다 가수마다 개성을 강조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조금 떨어져서 보면 비슷비슷 그게 그거다. 음악도 유명 작곡가팀에 몰리다보니 타자와의 명백한 차별화를 기하기가 어렵다. 사실 춤도, 섹시 콘셉트도 음악의 질과 맞물려야 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우리 여가수의 섹시 풍조에는 음악이 없다. 문제는 트렌드에 대한 압박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망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식의 사고로는 나른한 반응의 현 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패턴화를 거부하는 반작용과 역공의 묘가 필요하다. 실제로 순수를 내세워 성공한 걸그룹도 있다. 개체의 특성을 살린 음악 실험과 기성의 패턴을 박차는 도전의식을 묶어야 솟구쳐 오른다. 우리 여가수들의 섹시 풍조는 너무 빤하고 식상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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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