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됐건, 그런 다양한 사이키델리아의 구현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이었던 지방은 샌프란시스코였다(다양한 사이키델릭 록의 모습들 덕분에, 이 장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명되기보다는 보통은 지방에 따라 설명되는 편이다). 
소위 샌프란시스코 4인방이라고 불리던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그레이트풀 데드(Greatful Dead),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컨트리 조 앤 더 피쉬(Country Joe & the Fish) 등이 대표적이었고, 그 중 사이키델릭 록을 대표하는 밴드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아마도 그레이트풀 데드일 것이다. 




그레이트풀 데드. 사이키델릭 록의 전형이자 최고의 라이브 록 밴드의 하나일 것이다.
앞에 동굴에서 살다 나오신 듯한 외모의 기타 겸 보컬이 제리 가르시아.



사실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이 전성기였던 밴드였지만, 밴드는 리더였던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1995년 사망하기까지 미국에서 공연 수입 10걸 안에 꾸준하게 들던 밴드였고(비틀매니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레이트풀 데드의 경우에도 데드헤즈(deadheads)라는 말이 있을 정도), 아마도 록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라이브에 충실했던 밴드의 하나일 것이다. 




Greatful Dead - Dark Star. 최고의 라이브 밴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규작은 별 반응이 없었다. 
본인들은 좋아했을까?


장고 라인하르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가르시아는 물론 밥 위어(Bob Weir), 필 레시(Phil Lesh), 미키 하트(Mickey Hart), 빌 크로이츠만(Bill Kreutzmann), 빈스 웰닉(Vince Welnick) 등 멤버 전원이 각자의 음악 스타일을 가져온 밴드였던 그레이트풀 데드는, 그런 밴드의 성향상 사이키델릭 록은 물론 포크나 블루스, 컨트리까지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보여준 밴드였고, 자유로운 즉흥 연주에 능하여 오늘날 잼 밴드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포크 밴드로 시작하였으나, 여성 보컬인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 들어오면서 두 번째 앨범인 “Surrealistic Pillow”부터 사이키델릭 록을 연주했던 제퍼슨 에어플레인 또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였다. 
약물이나 자유로운 사랑 외 사회 참여 등을 가사에 녹여내었던 밴드는 히피의 반문화를 대변하는 밴드였고, 특히 ‘White Rabbit’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그 하얀 토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 이나 ‘Somebody to Love’ 같은 곡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밴드는 이후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 스타쉽(Starship)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거치면서 팝 밴드로도 인기를 얻었다. 
물론 라인업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아마 리더인 폴 캔트너(Paul Kantner)의 음악적 융통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이다.

(비교해서 들어봅시다. ‘White Rabbit’ 은 이 시기의 곡이고, ‘Nothing Gonna Stop Us Now’ 는 Starship으로 활동하던 80년대의 곡이다)




Jefferson Airplane - White Rabbit




Starship - Nothin Gonna Stop Us Now. 보다시피 추억의 영화 ‘마네킹’ 에 수록되기도 했다.




이런 샌프란시스코의 사이키델리즘은 곧 미국의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앞에서 얘기했던 버즈를 필두로 한 많은 포크 뮤지션들 또한 사이키델릭의 영향을 비껴 간 것은 아니다. 버즈 외에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 등도, 사실 사운드적으로 사이키델릭한 것은 아니었으나 - 그런 이미지로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정상적인 분들 - 적어도 가사는 사이키델릭 록의 방향성이 엿보인다. 
물론 음악적으로 영향받는 경우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아더 리(Arthur Lee)가 이끌었던, “Forever Changes” 나 “Da Capo” 같은 앨범을 발표했던 러브(Love)와, 포크와 사이키델릭 록이 복합되면서 중동풍의 분위기까지 가져왔던 음악을 들려주었던 캘리포니아 출신의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 - 동명의 멕시코 밴드와 영국 밴드와 혼동하지 말 것 - 일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만큼 강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와중에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은 로스앤젤레스였다. 

샌프란시스코와는 달리 어떤 무브먼트를 구성하기보다는 음악적 영감이 충만했던 개개인들만이 존재했던 이 곳은, 덕분에 혁신적인 음악을 들려주면서, 동시에 본인의 삶도 파란만장하기 그지 없던 뮤지션들을 배출한 곳이었다. 앞서 나온 러브는 물론, 프랭크 자파(Frank Zappa),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야말로 ‘인생이 사이키델릭’ 이었던 짐 모리슨(Jim Morrison)이 있었던 도어즈(Doors)가 있었다. 

물론 다른 뮤지션들이 더 유명하겠지만, 여기서 캡틴 비프하트 얘기를 잠깐만 하자. 

백 밴드였던 매직 밴드(Magic Band)와 함께 활동했던 캡틴 비프하트는 본래는 조각가였던 돈 반 블리에트(Don Van Vliet)가 프랭크 자파의 도움을 얻어 음악을 시작하게 되고 만든 밴드로(실제로 캡틴 비프하트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자파였다), 처음부터 멤버 전원이 가명을 사용하는 등 ‘우리는 멀쩡한 음악을 할 생각이 없다’ 는 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 우리에게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덕분에 좀 알려진. 사실 그 반대가 되어야 제대로겠지만 - 라이 쿠더(Ry Cooder)도 있었던 이 밴드는 프랭크 자파가 프로듀스했던 “Trout Mask Replica”부터 비평적 성공을 거두면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비프하트는 머더스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의 보컬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컬트적 팬층을 얻었다(말하자면 시종일관 인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불협화음적이었고 불규칙적인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은 록 음악 외에도 블루스, 아방가르드 재즈나 현대 클래식 음악이 괴팍하게 결합된 것이었고, 이후 데보(Devo)나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 그리고,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같은 밴드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오늘날 재조명되고 있다. 
물론 이 괴팍한 양반은 1982년 갑자기 음악을 접더니 그 이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계시지만. 역시 기인은 기인인 셈이다.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문희준을 이 시대의 캡틴 비프하트가 되려고 하는가?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참 ‘골 때리는’ 인상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을지도)





Captain Beefheart - Safe as Milk. 곡명부터 범상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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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