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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부에는 독자들의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책의 품절이나 출간예정 여부를 묻는 전화이고, 또 하나는 책의 오자나 파본을 지적하는 전화다. 출판사들로서는 소중한 독자의 전화이므로 성심성의껏 대하려고 애쓰지만, 독자들이 천차만별인지라 웃지 못할 경우도 꽤 있다.

 

한번은 지방에 사는 독자가 전화를 했다. 중년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무슨 무슨 제목의 책이 그 출판사 것 맞죠?” 그렇다고 확인을 해주자 다시 묻는다. “그럼 그 책을 어디서 사죠?” 아, 이것 참…. 서점에 가보거나 서점에 없거들랑 주문을 하면 된다고 말하자 또 묻는다. “아하, 서점에서 사는구나. 그런데 그 서점이 어디에 있죠?” 황당한 경우였다. 예전이라면 아주 시골을 빼고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동네서점이 죄다 없어진 탓도 있지만, 이 독자는 정녕 서점에서 책을 산 적이 없는 걸까? 사는 곳을 묻고는 근처 대도시 서점을 알려주며 전화를 끝냈지만, 입에서는 길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또 다른 독자 전화도 기억에 남는다. 책에 오자가 있다고 지적하는 전화였는데, 이런 경우 출판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겠노라고 하자 독자가 말했다. “바꿔주세요!” “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2쇄를 찍을 때 꼭 고쳐서….” 독자가 말을 끊었다. “아니, 그 집 책은 왜 전부 그 모양이래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책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독자들을 만날 때면, 그 독자를 탓하기보다는 이런 여건에서 책이나 만드는 우리 처지에 눈물이 맺힐 것 같다. 이런 불쌍한(?) 출판사에 가끔은 독자를 사칭한 사기성 전화도 걸려온다.

 

얼마 전에는 책이 파본이라며 바꿔달라는 전화가 왔다. 책 중간에 4쪽이 빠져 있고, 지방 출장길에 이름 없는 작은 서점에서 책을 사서 반품교환하기도 어렵다는 호소였다.

제작처의 실수가 종종 있는지라 순순히 주소를 받아 적고 전화를 끝냈는데 통화내용이 좀 이상했다. 파본이 나오면 누가 일부러 책 페이지를 잡아 뜯지 않는 한 4쪽이 빠지는 법은 없다. 종이를 최소 8장, 16장 단위로 접어서 묶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본이 생겼다는 책은 꽤 어려운 학술서여서 지방의 ‘이름 없는’ 서점에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책이었다. 작은 서점으로서는 이런 책까지 구색으로 갖춰놓기 어려우니까. 아니나 다를까 착불로 보낸다는 파본 책은 영영 오지 않았고, 다른 출판사 말로는 그 주소지가 유명하다 했다.

 

이참에 그 가짜독자를 포함하여 책이 만들어지는 물리적 과정을 간단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편집과 디자인이 끝난 책은 데이터를 인쇄소에 넘겨 물리적 제작 과정으로 들어간다. 페이지별로 디자인한 판면들을 먼저 ‘터잡기’라는 단계에서 전지 종이에 인쇄할 수 있도록 순서를 잡아 앉힌다. 앞뒤로 인쇄된 종이를 16쪽, 32쪽의 단위로 이리저리 접으면 페이지들이 순서대로 나오게끔 배열하는 작업이고, 이 단위들을 ‘대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터잡기를 마친 데이터는 커다란 인쇄판들로 출력해서 그것들을 차례로 인쇄기에 건다. 큰 전지들을 넣어 인쇄를 마치면 제책사로 옮겨서 접지를 하고, 대수별로 접지가 된 인쇄물을 차례로 묶으면 200쪽, 300쪽짜리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끔 이 대수를 하나 빠뜨리거나 순서가 바뀌면 16쪽 단위로 파본이 생긴다.

 

양장도서의 경우에는 책등 부분을 실로 꿰매고, 책 마구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꽃천’이라 부르는 헤드밴드를 붙이고, 북마크 기능으로 가름끈을 붙이는 등의 공정이 추가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소프트커버의 경우는 실로 꿰매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무선제책’이라 부른다. ‘반양장’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실로 꿰매는 제책을 하면서도 표지를 판지로 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표지의 접혀 들어간 부분은 ‘책날개’, 표지 바로 안쪽에 붙어서 표지와 내지를 붙여주는 역할을 하는 종이는 ‘면지’, 양장도서의 재킷은 ‘덮개’라고 부른다.

 

책 읽는 이들의 즐거움은 반드시 책의 내용에만 있지 않다. 아름답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책을 손으로 괜히 한번 쓰다듬고 책장을 여는 행위에는 책에 대한 설렘과 소유의 기쁨이 다 함께 배어 있다.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가 “책은 그 자체로 완성된 발명품”이라 말한 것은 책이 지식만이 아닌 감각의 즉각적 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는 물성으로서의 가치도 있다는 뜻에서 이 장황한 이야기를 쓴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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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