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에 파리에서 설립된 국제출판협회(IPA)는 저작권을 존중하고 올바르게 적용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120년이 넘도록 저작과 관련된 권리들을 저자와 출판사가 공정하게 나누는 표준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어 왔다. ‘문학과 예술 작품 보호를 위한 베른 협약’을 기준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회가 재산권의 분배에만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면 단순한 이익 단체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기울지 않았을까? 이제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본부를 옮긴 이 협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정신은 ‘출판의 자유’이다. 아마도 이 뜻을 굳건히 지키지 않았다면 65개국의 수천개 출판사들이 가입해서 활동하는 국제적 위상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가입한 나라를 인구로 따지면 56억명에 해당한다. 1947년에 설립된 대한출판문화협회(KPA)가 IPA에 가입해서 활동한 햇수가 60년이 넘었다. KPA의 가장 중요한 활동도 IPA와 마찬가지로 두 축으로 진행된다. 저작권과 출판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 그런데, 이 두 가지 활동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종이 위에 활자로 찍힌 것만 책이라는 고루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미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용할 수 있는 매체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많이 이동했고 그 내용들을 복사하고 전파하는 기술의 발전도 눈부시다. 공장 규모의 인쇄소가 아니면 얻을 수 없던 양질의 결과물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저작권자나 출판권자의 허가 없이 무단 복제하는 것이 손쉽고 단속도 어렵다. 정부 기관도 예산 부족과 권한 문제를 들어 단속에 소홀한데, 이것이 그냥 두어도 될 만큼 한가한 문제가 아니다.

 

매체가 다양해졌지만 어느 매체가 되었든 그곳에 실을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그 ‘콘텐츠’를 만드는 저자와 출판사에 ‘콘텐츠’로 편익을 얻은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산업은 성립하지 않는다. 저자와 출판사는 ‘콘텐츠’를 만드는 두 축이므로 둘 사이에서 투입된 자원을 고려해서 적절한 비율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서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복제에 대한 보상은 저작권자와 출판권자가 함께 나누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위해서 복제, 복사를 하는 경우에 걷는 보상금의 분배에서 출판권자들은 배제되어 있다. 합리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어떤 목적, 어느 매체가 되었건, 그리고 거기에 실린 콘텐츠가 어떤 기술을 통해서 이전되었건 창작이, 그리고 산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용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그것이 적절하게 분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저자와 출판사가 함께 개발한 원천 콘텐츠의 권리가 종이 위에서만 보호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콘텐츠를 개발한 사람들과 보급하는 데 애를 쓴 사람들이 기여한 바에 따라 적절한 배분을 하면 출판과 인접 산업이 함께 성장하고 독자들은 더 좋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산업적으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노력과 동시에 출판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출판의 자유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권의 근본적인 측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는 이야기이다. 모든 출판사들이 자신들이 출판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모든 출판물을 자유롭게 출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특히, 출판된 책이 출판사가 속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 도전한다고 해서 억압받으면 안 된다. 이런 주장을 할 때, 늘 인용되는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네가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데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없어졌다고 믿지만, 여전히 권위적인 관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이 크다. 청와대에 ‘보여주기 식 정책을 중단하라’는 청원이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이유는 이전 시대에 속한 ‘불통’을 무기로 변화에 요지부동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거울 반대편에,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 관용과 이해는 없이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 편향, 종교적 극단주의, 그리고 도덕적 권위주의 등의 압력이 온 방향에서 거센 지금, 외부 검열이 줄어들었지만 자발적 검열은 내재화되고 있다. 다양성이 없어지고 한 방향으로 쏠린 사회가 처하게 되는 위험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해서 잘 알고 있다.

 

출판이 산업적으로 발전해서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어야 다양한 목소리를 보존해서 한 사회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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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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