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아이돌 가수가 판세를 장악하면서 TV프로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밴드의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텔 미’와 ‘노바디’로 걸그룹 시대를 연 ‘원더걸스’의 최근 컴백이 화제를 모은 데는 반주에 맞춰 춤추지 않고 악기를 연주하는 광경이 주는 어색함 혹은 생소함이 작용했다. “악기들이 몸에 비해 너무 커서 전체적으로 버거워 보였다”는 한 방송작가의 소감은 아이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새와 그 음악이 주는 낯섦과 관련할 것이다. “보면서 그냥 즐겨야 하는데 괜히 내가 떨리고 긴장되더라고요.”

원더걸스는 밴드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설득력을 불어넣기 위해 박진영이 작곡한 타이틀곡 ‘아이 필 유’를 제외하곤 앨범의 상당수 곡을 멤버 스스로가 썼다. 록이든 재즈든 밴드와 직결되는 개념은 자가발전과 독자성이다. 클럽 무대에 오를 연주력을 쌓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무명 밴드가 볼 때 그 진정성은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대중과 음악관계자들로부터 밴드로 변신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걸그룹 원더걸스가 타이틀 곡 'I Feel You'를 발표하며 화려한 무대를 펼치고 있다. _경향DB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프로듀서 김철영은 “성공 여부를 떠나 원더걸스의 방향 선회는 우리 음악계가 춤추는 아이돌만으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하나의 방증일 것”이라고 말했다.

‘코어 매거진’이란 이름의 인디 밴드는 아이돌그룹 한복판에 밴드로 서겠다는 용단을 내렸다. 지난 8월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올해로 네 번째의 ‘케이콘(K-Con)’에 밴드로 출연한 것이다. 이 무대는 그간 섹시와 절도의 군무로 무장한 국내 아이돌그룹만이 나오는 말 그대로 K팝 콘서트다. 관객들은 거의가 K팝이 제공하는 현란한 춤과 비주얼을 확인하려고 온 미국의 10대들로 록밴드나 팝밴드가 서기에는 왠지 생뚱맞아 보였다.

또한 엠넷 방송프로로 중계되어 방송음악프로 특성상 실제 연주하고 노래하는 라이브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코어 매거진도 연주는 미리 녹음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스타를 보려고 온 관객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케이콘 측도 코어 매거진 멤버들도 긴장했다. 완벽한 밴드 라이브가 아닐지라도 어쨌든 다분히 록적인 신스 팝 사운드는 아이돌그룹 음악과는 성질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예상을 비껴갔다. 놀랍게도 무관심이나 야유가 아니라 2만명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다. 한 미국 팬은 “기대하지 않고 왔는데 너무 매력적인 음악! 앞으로 코어 매거진 응원하겠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아이돌그룹의 댄스 일변도에서 벗어나자는 뜻에서 코어 매거진을 올린 케이콘 측은 앞으로 장르 다양화 시도를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2013년 11월 윤도현밴드(YB)가 아이돌그룹만이 진출하는 중국 베이징에 들어가 단독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두고두고 화제다. K팝에 회의적인 일각의 중국 언론들은 “K팝은 단순한 수출 도구”라고 비판해 왔다. 그들에게 윤도현밴드의 살아 넘치는 록사운드와 폭발적 가창력은 충격이었다. 중국 현지 매체들은 ‘통제력을 잃은 관객들’이란 표현으로 열광의 도가니가 된 공연을 우호적으로 묘사했다. “아이돌 기반의 한류 문화와는 차별화된 콘셉트였던 이 공연의 성공은 향후 한류 발전 방향에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본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이제 떼거리로 춤추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K팝을 넘어서 K록, K재즈, K메탈, K국악 등 다채로운 콘텐츠가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류의 기대수명은 4년’이라는 우려를 불식할 방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르 다양화가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주하는 밴드가 자주 나서서 장면 전환에 신경을 써야 한다. 록이든, 신스 팝이든, 퓨전재즈든 연주하는 밴드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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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