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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금 신경질이 났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책자에는 분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VR(가상현실) 작품 <Carne Y Arena>(육체와 모래)가 출품됐다고 나와있었다. 칸은 영화제 역사상 최초의 VR 작품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냐리투는 <바벨>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동시대의 명장이다.

 

그런데 <육체와 모래>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명시돼있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언론 담당자에게 문의했더니, “소수를 위한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다. 우리에게도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 정보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지나 메일함을 정리하는데 낯선 발신인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육체와 모래>에 초대합니다.” 깜짝 놀라 클릭했더니 영화제 기간 사이에 30분 단위로 <육체와 모래>의 관람을 예약받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이름을 쳐넣고 예약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육체와 모래> 포스터. 칸국제영화제 제공

 

약속된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나갔다. 직원이 검은색의 공식 의전 차량으로 안내했다. 차량은 시내를 빠져나가 칸 외곽의 거대한 창고 같은 건물로 들어섰다. 벽에는 작품에 대한 이냐리투의 설명이 붙어있었다. <육체와 모래>는 멕시코-미국 국경 지대를 넘나드는 이주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냐리투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난민들을 만났고 그들의 경험을 작품에 녹였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적 여정이 단지 우리에게 하나의 통계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고, 느껴지고, 들리고, 체험되길 바란다”고 했다.

 

하얀 방이었다. 곳곳에는 낡은 신발들이 뒹굴고 있었다. 실제 멕시코-미국 국경 근처의 사막에서 주운 신발이라고 한다. 이 신발의 주인은 누구이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을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것이 <육체와 모래>의 목적이다.

 

지시대로 맨발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널찍하고 어두운 방에 세 명의 안내자가 서 있었다. 바닥에는 버석버석한, 그래서 밟는 기분이 좋지 않은 모래가 깔려있었다. 안내자들은 배낭을 메게 하고 VR 고글과 헤드폰을 씌웠다.

 

여행 삼아 왔다면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여명의 사막이 펼쳐졌다. 하늘은 아름답고, 주변은 고요했다. 인기척에 돌아보니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조용한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성인 남녀가 있었고, 네다섯살배기 아이도 있었다.

 

갑자기 강렬한 서치라이트 몇 개가 주변을 비추면서 고요가 깨졌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배회했고, 땅에서는 순찰차 두 대가 달려와 급정거했다. 중무장한 거구의 남자들이 뛰어나와 총을 들이대며 “엎드려” “손을 뒤로 해”라고 소리 질렀다.

그때 갑자기 경찰이 사라지더니 테이블이 생겼다. 테이블 주위로 아까의 그 난민들이 둘러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사람으로 가득 찬 보트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보트 바깥으로 밀려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미국 사막의 이주자와 지중해의 난민이 겹치는 순간이었다. 난민은 도처에 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은 모두 난민이다.

 

다시 경찰이 나타났다. 난민들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끌려갔다. 그대로 끝나는가 싶더니 순찰대 한 명이 갑자기 내게 총을 겨눈 뒤 “엎드려”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가상현실 속 가짜경찰이었다. 하지만 그 거친 목소리에 난 엉거주춤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고요. 이제 난민도 경찰도 없다. 어느덧 날이 조금 더 밝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래 위에 남은 몇 켤레의 신발만이 6분30초간의 체험을 증명하고 있었다.

 

70주년을 맞은 올해 칸영화제는 몇 가지 색다른 시도를 했다.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 제인 캠피언의 <톱 오브 더 레이크>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를 특별 상영했고, 첫 VR 작품 <육체와 모래>도 선보였다. 영화제 초반부를 달군 ‘<옥자> 논쟁’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매체가 아니라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화면 구석구석까지 세심하게 공들인 영화를 작은 화면에서 보는 것은 시각적 낭비이고, 서사의 기나긴 흐름이 중요한 작품을 압축적인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것은 무리수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끔찍한 전쟁 사진을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할 때의 딜레마를 언급했다. 전쟁의 끔찍함이 휘발된 채, 타인의 고통이 오직 스펙터클로 소비되거나 ‘난 그들을 연민한다’는 자기만족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육체와 모래>는 손택의 딜레마를 피해갈 수 있을까. 이냐리투는 난민이 국경수비대를 만났을 때의 공포와 불안은 VR을 통해야 가장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확실한 건 <육체와 모래>를 체험하고 난 뒤, 난민에 대한 내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난민은 지금 가장 외롭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다. 아직 <육체와 모래>보다 이 인식을 강렬하게 심은 작품은 없었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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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