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스 노바’는 누군가에겐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이었을 것이다. ‘공포의 시간’ ‘귀를 찢는 불협화음’ ‘극도로 난해하고 괴상하고 광적’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라틴어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스 노바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06년부터 선보인 현대음악 프로젝트다. 아르스 노바는 현대음악 연주회와 젊은 작곡가를 대상으로 한 마스터클래스로 구성된다.

 

대중은 낯익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 언젠가 들어본 듯한 장르의 음악, 익숙한 줄거리의 소설을 좋아한다.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변이와 새로움뿐이다. ‘새로운 예술’은 그 모든 익숙함에 도전한다. 천연덕스럽게 규율을 위반하고 관습을 비웃는다. 그래서 당대에는 격렬한 저항과 오해에 직면한다. 하지만 새로운 예술은 주저하지 않는다. 옛 규칙이 파괴된 자리에 새 규칙을 정초하려 든다. 새로운 예술은 많은 경우 실패하지만 아주 가끔 성공해 불멸의 작품으로 남는다. 서두 두 번째 문장의 세 가지 표현은 각각 베토벤 교향곡 9번, 쇼팽의 마주르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당대 저널리스트, 평론가들의 표현이었다.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는 ‘듣기’보다는 ‘경험하기’를 위한 음악이었다. 피아니스트는 건반이 아니라 줄을 훑어 연주했고, 가죽치마 입은 소프라노가 채찍과 모형 총을 든 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죄르지 리게티, 올리비에 메시앙, 존 케이지, 피에르 불레즈같이 전설적인 명성을 지녔지만 한국에선 한 번도 실연된 적이 없는 작곡가들의 음악들을 아르스 노바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초연, 아시아 초연은 흔했고, 세계 초연된 곡들도 있었다. 아르스 노바가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체임버홀, LG아트센터 등에 있던 관객들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어쩌면 훗날 음악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지 모르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아르스 노바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이었다. 아르스 노바를 이끈 이가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 진은숙이었다. 아니, 진은숙은 지난주 서울시향 단원들과 음악팬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갑작스럽게 사퇴 의사를 밝혔으니, 이제 ‘전 상임작곡가’가 됐다.

 

한국 문화계에서 ‘월드 클래스’를 꼽아보자. 문학에서는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한강을 들 수 있겠다. 국제영화제에서 앞다퉈 초청하는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는 월드 클래스 영화감독이다. 미술에선 양혜규가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현대음악에서는 단연 진은숙이다. 진은숙은 2004년 그라베마이어상, 2005년 아널드 쇤베르크상, 지난해 시벨리우스 음악상 등 현대음악의 주요 상들을 잇달아 받았다. 진은숙은 역대 한국의 어느 작곡가도 생각지 못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아르스 노바에 세계적 명성의 연주자들을 불러오고, 상임지휘자 정명훈이 떠난 서울시향의 중심을 잡아온 것도 진은숙이었다.

진은숙이 서울시향을 떠난 이유는 명확지 않다. e메일에서 그는 ‘여러 가지 사정’이라고만 밝혔다. 그가 “조속한 시일 내에 한국음악계를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임이 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님을 추정할 수 있다.

 

사정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진은숙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판해왔다. 진은숙이 2006년부터 ‘장기 재임’해왔다고 지적했고, 아르스 노바의 유료 관객이 적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시의회는 서울시향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아르스 노바 예산, 진은숙의 인건비도 줄였다. 누군가 진은숙의 자리를 이어받겠지만, 아무나 이어받을 수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술적 재능만큼 불공정하게 주어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2류 작곡가가 평생 오선지를 붙잡는다 하더라도, 폴 매카트니가 흥얼거리며 10분 만에 작곡한 멜로디를 흉내 낼 수 없다. 2류 화가가 평생 붓을 놀려도, 피카소 그림의 구도가 가진 비밀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무능한 예술가가 예술 외적인 힘을 빌려 명성을 얻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잘못이다. 유능한 예술가가 예술 외적인 이유로 내쳐지는 것도 문제다. 예술에서 ‘유능함’이란 매우 측정하기 어려운 속성이지만, 관객과 비평가, 언론은 격렬하면서도 지속적인 숙의를 통해 한 예술가에 대한 평판을 구축해 나가기 마련이다. 그에 따르면 진은숙의 감각이 낡았다거나, 생각이 구태의연하다거나, 추진력이 미덥지 않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반달리즘이란 고대 로마의 문명을 파괴한 게르만족 일파 반달족에게서 따온 말로, 문화나 예술을 파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세계 정상급 예술가에게 “장기 집권한다” “돈을 못 벌어 온다”고 타박해 내쫓는 행위를 칭하기 위해 반달리즘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다.

 

<백승찬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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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