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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72)의 신작을 한 달 간격으로 보며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영화는 영화관을 벗어난다. 극장을 나선 뒤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화두를 준다는 점에서 스필버그는 거장이다.

 

2월 개봉한 <더 포스트>는 1971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뉴욕타임스가 미 국방부의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에 관한 특종을 터뜨린다. 이 보고서에는 트루먼에서 존슨에 이르기까지 4명의 대통령들이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을 감추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쟁사를 자처하는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벤은 어떻게든 낙종을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망한 남편의 뒤를 이어 워싱턴포스트 사주가 된 캐서린의 입장은 다르다. 캐서린은 정부와의 관계, 주식시장 상장, 회사의 장기적인 생존, 게다가 오랜 친구인 맥나마라 전 국방부 장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 이미지

 

쉬운 선택은 뉴욕타임스와 ‘펜타곤 페이퍼’를 최초 보도한 기자의 이야기를 뒤따르는 것이다.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기까지의 숨막히는 과정, 보도를 막으려는 정부와의 투쟁, 최초 보도를 따라잡으려는 워싱턴포스트와의 경쟁을 그렸으면 영화의 전개는 깔끔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앞서간 뉴욕타임스가 아니라 ‘물 먹은’(‘낙종’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 워싱턴포스트가 중심이고, 그중에서도 강경한 편집국장 벤보다는 주저하는 발행인 캐서린에게 극의 전개를 맡긴다. 더 흥미로운 건 벤을 추동하는 힘이 언론 자유에 대한 신념, 위험에 빠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 베트남전에서 죽어가는 미국 청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벤이 기밀 문건을 입수하기 위해 수하 기자들을 달달 볶고 기사를 내기 위해 발행인 캐서린을 들이받는 이유는, 뉴욕타임스에 대한 경쟁심 때문이다. ‘2등 신문’에 근무하는 자존심 강한 벤은 뉴욕타임스가 어마어마한 특종을 낼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함과 동시에 불안, 초조해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민주주의든, 언론자유든 벤에게는 관심 밖이다. 벤이 기사를 쓰려는 이유는 라이벌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벤의 직업윤리다.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 하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봉사해야 한다. 직업윤리에 충실한 사람이 결국엔 자기 자신과 세상을 구한다. 그것이 <더 포스트>의 결론이다.

 

그런데 일만 열심히 하면 삶은 무슨 낙인가. 지난달 개봉한 스필버그의 또 다른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일하기 전에 갖춰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근 반 세기 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한 <더 포스트>와 달리, <레디 플레이어 원>은 27년 뒤인 2045년이 배경이다. 대부분의 인류는 컨테이너를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슬럼가에서 극빈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유일한 낙은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현실(VR)이다. 각자의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사람들은 VR 고글을 쓴 채 오아시스에 접속해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

 

오아시스 안에서 이용자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늘을 날며 춤출 수 있고, 치열한 전투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막대한 사이버머니가 걸린 레이싱 경기에도 도전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도 있다. 흑인 여성이 거구의 백인 남성 행세를 할 수도 있고, 아예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나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스필버그는 오아시스를 대중문화 영웅들에 대한 찬사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1970년대 이후 영화, 만화, 게임, 음악의 찬란한 유산들이 영화 속에 담긴다.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공포영화 <샤이닝>(1980)의 무시무시한 호텔이 재현되고, <빽 투더 퓨처> 시리즈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이 레이싱 경기에 등장한다. 인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도 인용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1988)의 바이크나 건담은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다른 감독이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었다면 가장 어려운 점은 연출이 아니라 이 많은 콘텐츠에 대한 사용권 획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필버그라는 이름값에 그 모든 창작자들은 앞다퉈 자신들의 창조물을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시키도록 허락했다. 그건 스필버그가 단지 돈을 많이 번 명성 있는 감독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난 시대 대중문화에 뜨거운 애정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추정 제작비는 1억7500만달러(약 1800억원)다. 이 많은 돈을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 과시, ‘오타쿠’에 대한 헌사에 쏟아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그렇게 했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끝없는 탐구, 취향을 나누는 사람들에 대한 동료의식, 남들이 뭐라 하든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이 우리를 풍성하게 한다. 그것이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론이다.

 

<백승찬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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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