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낸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1977~1983)은 대단히 봉건적인 영화였다. 고아 소년 루크 스카이워커는 은하계 외딴 행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악한 황제가 평화로운 공화국을 무너뜨리며 은하계가 요동친다. 제국군의 손에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잃은 루크는 은둔한 제다이 기사 오비완 케노비에게 수련을 받으며 복수를 꿈꾼다. 그리고 자신이 강력한 ‘포스’의 소유자임을 깨닫는다.

 

‘포스’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지배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이 “포스가 당신과 함께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이다. 포스는 동양의 기(氣) 개념과 유사하다. 포스를 사용하면 지적, 물리적 능력을 모두 증진시킬 수 있으며, 때로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초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포스를 가진 것은 아니다. 포스는 수련에 의해 증폭되지만, 애초에 포스가 강한 사람은 따로 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루크는 어쩌다 그리 강력한 포스를 갖게 됐을까.

 

오리지널 <스타워즈>는 이를 ‘혈통’으로 설명한다. 루크의 아버지는 대중영화가 낳은 가장 매력적인 악당, 다스베이더이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요다, 오비완 케노비, 레아 공주, 한 솔로 등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오리지널 <스타워즈>는 결국 강력한 포스를 가진 다스베이더와 루크 부자의 대결을 중심에 둔다. 레아 공주 역시 다스베이더의 딸이긴 하지만 어쩐 일인지 포스와 인연이 없다는 점에서,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는 남성 영웅의 서사이기도 하다.

 

2015년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오리지널 <스타워즈> 다음 세대의 이야기다. 오리지널에서 루크가 있던 자리에는 집도 절도 없는 여성 레이가 자리한다. 레이는 추락한 우주선 부품을 고철로 팔아 먹고산다.

 

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레이에게 엄청난 포스가 잠재해 있음이 드러난다.

루크의 제자였던 악당 카일로 렌은 수년간 포스를 수련했으나, 평생 광선검 한번 잡아보지 못한 레이의 포스를 쉽게 당해내지 못한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루크가 다스베이더의 아들이라고 밝혀졌던 것처럼, 팬들은 레이 역시 고귀한 혈통이며 영웅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영화<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포스터.

 

개봉 중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레이의 부모는 제다이도, 귀족도 아니었다. 레이 부모는 레이를 술값 몇 푼에 팔아버린 주정뱅이였으며, 지금은 죽어서 걸인 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레이 역시 이를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레이는 강력한 포스를 물려받은 고귀한 혈통이기는커녕 그저 ‘흙수저’일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레이가 지닌 강력한 포스는 어찌된 일인가. <라스트 제다이> 초반부, 레이는 은둔한 루크를 찾아가 속세로 나와 힘을 보태달라고 청한다. 도가의 신선들이 그러하듯, 루크도 처음에는 레이의 요청을 거부하다가 결국 레이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전한다. 그중 하나가 포스의 성질에 대한 것이다. “포스는 제다이가 갖는 힘이 아니라 만물에 존재하는 힘으로 만물을 연결한다.”

 

포스는 특정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깨달음. 포스는 돌을 들어올리거나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세상에 내재하는 에너지 자체라는 믿음.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고귀한 혈통을 가진 영웅에게 내재했던 포스는 2017년에 이르러 누구나 갈고 닦을 수 있는 덕성에 가까워졌다. 영화의 종반부, 저항군이 대부분 궤멸하고 극소수의 생존자만이 남았다. 이 적은 사람들로 강력한 다수의 악당들을 물리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영화는 제다이, 장군, 베테랑 군인이 아니라 생각지 못한 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예닐곱 살 됐을 법한 소년이 청소를 하기 위해 빗자루에 다가선다. 소년이 손을 뻗자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듯 빗자루가 손으로 딸려온다. 포스는 마구간지기 소년에게도 있었다.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난 자, 돈 많은 자, 권력 있는 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다는 믿음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스타워즈의 세계관은 40년 만에 경천동지하게 바뀌었다. 오만한 권력자가 무너지고 선량한 무명의 시민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민주주의 서사는 전 세계를 상대로 펼쳐지는 할리우드 최대의 이벤트 영화에도 틈입했다. 민주주의 서사가 그만큼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라는 방증이다.

 

다가오는 연말, 우리 모두에게 포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포스를 믿되, 함부로 휘두르진 않았으면 좋겠다.

 

<백승찬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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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