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의 밥 딜런. 아마 록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딜런이 전자기타를 들고 등장한 것은 1965년의 여름, 최고의 포크 축제였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이었다.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Butterfield blues band) - 알 쿠퍼(Al Cooper)와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가 있었던 - 를 백 밴드로 하고 등장한 딜런의 모습은 포크 팬들 - 특히, 소위 ‘포크 순정파’ 들 - 에게는 경악에 다름 아니었다. 딜런은 우디 거스리를 계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뮤지션이었는데 그런 그가 로큰롤이라니, 이런 식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딜런 본인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많이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가 미국 포크의 전통을 ‘계승’ 하는 리더가 되고 싶었을까? ‘Don't Follow the Leaders’ 같은 곡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딜런의 변신은 사실 생뚱맞은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중반은 이미 비틀즈가 미국을 휩쓸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건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포크 뮤지션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고, 딜런도 이후 그러한 충격을 술회한 바 있다. 정통 포크는 점차 낡은 것이 되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비틀즈)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있었다...내겐 명확했다. 그들이 지속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난 그들이 음악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머리 속에는 비틀즈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로큰롤과 포크의 결합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시도였다. 본격적인 포크 록이 탄생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Bob Dylan - Like a Rolling Stone. 뉴포트에서의 연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의 무대는 야유로 가득했었지만, 딜런이 전자기타를 연주한 65년에서 66년까지의 세 장의 앨범은 매우 훌륭한 결과물을 담고 있었고(특히나, 블룸필드의 연주가 돋보인다), ‘Like a Rolling Stone’ 의 빅 히트는 포크 록에 큰 힘을 부여하였다. 6분이 넘어가는 긴 곡이 차트 2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거둔 것이다.(물론 이 때도 팬들은 계속 싸웠다. 66년의 로열 앨버트 홀 공연에서는 딜런의 새로운 스타일을 지지하는 팬들과 그렇지 않은 팬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딜런은 이후에도 ‘빅 핑크’ 에서의 더 밴드(The Band)와의 세션 및, “Nashville Skyline” 에서는 컨트리는 물론(1969년, 모두가 사이키델릭에 목매고 있던 그 시절에!), 종교적 성향의 음악을 하기도 하면서 현재까지 계속 왕성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Bob Dylan & The Band - Gates of Eden

이왕 빅 핑크에서의 세션 얘기를 한 김에, 더 밴드부터 잠깐 얘기해 보자. 사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The Last Waltz”(더 밴드의 고별공연을 담고 있는 콘서트 필름. 수많은 최고의 뮤지션들이 등장해서 명연을 보여준다)으로도 유명할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더 밴드는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의 백 밴드로 시작한 밴드로, 무려 로이 부캐넌에게 기타를 배웠다는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이 밴드의 중심이었다. 딜런이 우드스탁에 정착했던 시절, 같이 우드스탁에 있었던 것이 더 밴드의 멤버들이었고, ‘빅 핑크’ 는 더 밴드의 멤버들이 모여 살던 임대주택의 이름이었다. 거기서 딜런과 함께 했던 세션의 녹음이 "The Basement Tapes" 였고, 밴드의 데뷔작은 그래서 “Music from Big Pink” 가 된 것이다. 사실 더 밴드는 컨트리 리바이벌을 이끌었던 ‘컨트리 록’ 밴드라고 해야겠지만(컨트리라고 다 존 덴버 같은 스타일이 아님), 딜런과의 세션이 대단한 명연이었음은 (밴드에게나, 딜런에게나)부인할 수 없다.

(사진은 빅 핑크 앞에서의 더 밴드)

딜런 외에 포크 록의 영광을 대표했던 것은 버즈(The Byrds)이다. 뭐 사실 데뷔작은 거의 밥 딜런 명곡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지만(일단 대표곡인 ‘Hey, Mr. Tambouring Man’ 자체가 밥 딜런의 원곡의 리메이크이다)... 버즈는 사실, 국내에서는 - 비교적 짧은 활동 기간 탓인지 - 그리 인기있는 것 같진 않지만(아마도 국내에서는 ‘Turn! Turn! Turn!’ 이 유명할 것이다. 물론 포레스트 검프 때문이다. 참고로 이 노래는 피트 시거의 원곡의 리메이크), 브리티쉬 록의 모습을 미국의 포크에 흡수시킨 전형을 만든 것은 버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딜런화된 비틀즈’ 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특히나 로저 맥귄(Roger McGuinn)의 12현 리켄베커 기타의 ‘쟁글거리는’ 연주는 밴드의 큰 개성이면서 이후의 후배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부분이기도 하다.
 
The Byrds - Turn! Turn! Turn!

물론 버즈가 그 스타일에 천착했던 것은 아니고, 사실 버즈는 활동 기간 동안 꽤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해 왔다. “Fifth Dimensions” 앨범에서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나, “Sweetheart of the Rodeo” 에서의 컨트리 록,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에서의 스페이스 록의 면모들이 그 대표일 것이다. 버즈의 멤버들이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이나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 등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것은 밴드의 역량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 줄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동네는 좀 달랐지만, 그 외에도 ‘California Dreamin'’ 으로 유명한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나 컨트리 존 앤 더 피쉬(Country Joe & the Fish) 등도 적어도 초창기에는 확실한 포크 록을 연주하고 있었다. 물론,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le)도 - 활동하는 동네는 틀렸지만 - 포크 록을 이끈 뮤지션이다.

무려 밥 딜런에게 인생에 보기 드물 정도의 야유를 선사했던 포크 록이 왜 그렇게 ‘대세’ 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얘기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포크 록이 기존의 포크와는 분명히 다른 특성을 가졌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것은 프로테스트 포크와 록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당시, 포크는 민중 음악이지만 학생이나 지식인들의 음악에 가까웠고, (비틀즈를 위시한)록은 영국에서 청년 문화로써, 특히 노동계급 10대의 음악으로써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포크 록은, 하위 문화에 대한 통찰과 결합된 포크의 시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크 록이 미국에서의 포크 록 밴드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사실, 딜런이 비틀즈를 보고 영향을 받은 것 만큼이나, 비틀즈도 딜런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어쩌면 영국에서도 포크 록의 움직임이 당시에 일어났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뒤에 적겠지만, 영국과 미국에서 각자 포크 록이 걸어간 길은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두 곳에서 모두 포크 록은 명확한 조류였다는 사실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