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에서 오늘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이르기까지 우주 역사의 전 과정이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20여년 전 <토지>를 11일에 걸쳐 통독한 최유찬 전 연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신비 체험’을 경험했다는 그는 논문 한 편을 쓰려던 계획을 접었다. 대신 신들린 채 자판을 두드렸다. 그리고 집필 4개월 만에 500쪽이 넘는 <토지를 읽는다>(1996)를 냈다. <토지>에 대한 첫 전작 평론서였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최 교수의 연구는 <토지의 문화지형학>(2004), <토지를 읽는 방법>(2008), <세계의 서사문학과 토지>(2008), <박경리의 ‘토지’ 읽기>(2018)로 이어졌다.

 

대하소설 <토지>(5부 20권·마로니에북스)는 한국 소설사의 최대 문제작이다. 집필기간 26년, 등장인물 400여명, 원고지 3만장 분량의 이 책은 한국 소설의 대하(大河)가 됐다. 1994년 완간 이후 이 소설만을 다룬 박사 논문이 13편 나왔다. 석사 논문과 일반 논문을 합하면 수백 편이 넘는다(박상민, ‘박경리 <토지> 연구의 통시적 고찰’). <토지> 연구는 또 하나의 ‘대하’를 이루었다. 연구층이 두꺼워지면서 2014년에는 ‘토지학회’가 창립됐다. 소설 한 편을 연구하는 학회가 만들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토지학회는 토지문화재단과 매년 박경리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박경리 작가의 10주기이자 <토지> 완간 24년이 된다. 초창기 문학평론가들이 주도하던 연구는 최근 문학을 넘어 이웃 장르의 연구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 2018 원주박경리문학제에서는 토지 속 의복, 지리, 역사문화공간 등 다양한 주제의 연구 사례가 발표됐다. ‘별당아씨’ ‘강포수’ ‘심금녀’ 등 토지 속 인물 한 명씩을 다룬 논문들도 선보였다. <토지>가 문학의 콘텐츠를 넘어 한국 근대 역사와 문화를 포괄하는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사회학자 김호기 교수는 말한다. “‘토지’는 열린 텍스트다. ‘토지’에는 여러 코드가 존재한다. 문학으로서의 ‘토지’, 역사로서의 ‘토지’, 철학으로서의 ‘토지’ 읽기가 가능하다.”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를 다 포용하기 때문이다. <토지>가 위대한 것은 세상을 읽어내는 다중의 코드를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조운찬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