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음악동료인 동시에 경쟁상대였다. 작사·작곡 능력이 탁월한 폴 사이먼과 미성의 소유자 아트 가펑클. 폴 사이먼은 자신이 직접 영화음악을 완성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반면 아트 가펑클은 리메이크 곡 위주의 음악활동을 지속했다. 이러한 ‘곡 따로 노래 따로’ 현상은 만화계에서도 등장한다. 일본 만화 <마스터 키튼>과 <맛의 달인>은 스토리작가와 만화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만화가 허영만의 옆자리에는 김세영이라는 걸출한 스토리작가가 존재했다. <벽> <오!한강> <타짜>에 이르는 명작들이 김세영의 시선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인식한 허영만은 각고의 노력 끝에 <식객>부터는 자신이 직접 글과 그림 작업에 관여한다. 한편 국문학을 전공한 강풀은 글과 그림을 아우르는 웹툰작가의 시대를 주도한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만화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대화에서 차용하는 만화라는 표현은 비현실적인 상대방의 인격을 폄하하는 용도로 쓰였다. 하지만 웹툰의 전성기가 열리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진다. 만홧가게나 도서대여점에서나 접하던 만화책이 휴대폰 속으로 들어왔다. 최규석의 언어를 빌리자면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인터넷과 휴대폰 공간에 만화가 입주하면서 3세대 만화가들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글과 그림 모두를 창작한다. 역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그림 실력이 뛰어나도 글쓰기 능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배경에서 최규석의 등장은 의미가 깊다. 10년이 넘는 무명작가 시절을 버틴 뒤에 그는 재미보다는 현실을 다루는 작품에 도전한다. 어려운 선택이었다.

 

만화 <송곳>은 최규석의 감각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수십 번에 걸친 취재 끝에 문제작을 세상에 선보인다. 문화예술 탄압이 판을 치던 2015년 5월에 <송곳> 1편을 출간한다. 초기작 <습지생태보고서>에서 드러난 웃음코드는 <송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림체는 거칠고 투박하다. 촌철살인의 질문만이 <송곳>의 골격을 이룬다.

 

외국 기업이 경영하는 대형마트에서 탄압받는 노동자의 일상이 <송곳>의 큰 줄거리다. 여기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노동상담소에서 일하는 구고신이다. 그는 민주화투쟁 끝에 중병을 얻지만 노동자의 편에서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구고신은 잠깐 머무는 일터에 매달릴 필요가 있냐고 항변하는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정류장은 없다고.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곳이 목적지라고.

 

최규석은 자신이 취재한 사람들의 의지와 회의, 낙관과 비관, 영광과 상처를 접하면서 만화를 완성했다고 언급한다. 구고신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못하고 주면 주는 대로 못 받는 인간들, 세상의 걸림돌 같은 인간들이 노동법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최규석은 오물을 뒤집어쓴 뒤에 찾아오는 역설적 자유의 가치를 등장인물 이수인 과장에게 투사한다. 이 과장은 만화에서 송곳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송곳은 위해적인 특성을 지닌 물건이다. 저자는 송곳에 곧은 인성을 부여한다. 탄압과 무시를 일삼아도 하나쯤은 비집고 나오는 존재. 노조설립을 불허하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용기.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신념. 송곳이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두번째 세상을 여는 묵직한 열쇠이다.

 

만화 <송곳>의 유명세는 작품의 확장성에 근거한다. 최규석은 노동문제를 포함한 일상에서 발발하는 비합리성을 만화로 풀어낸다.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은 재밌지 않으면 인생은 비극이라 말했다. 과연 그럴까. <송곳>과 <100℃>는 재미보다 의미를 추구하는 만화다. 앞으로도 최규석은 막다른 길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만화를 만들 것이다. 최 작가의 다음 질문이 궁금해진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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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