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너 박사는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그는 교통사고로 전복된 차량에 갇힌 연인을 구출하는 데 실패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박사는 위급상황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에 관한 조사에 몰두한다. 연구과정에서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이 원인임을 발견한 데이비드 베너. 그는 감마선에 노출되면서 스스로가 헐크라고 불리는 초능력자로 변신한다.

 

소개한 내용은 1978년부터 1982년 사이 대한민국 안방을 점령했던 미국산 드라마의 줄거리다. 제목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위급상황에 처하면 앙다문 이빨과 확장된 근육을 보여주는 장면이 드라마의 압권이었다. 헐크가 괴력을 발휘할 적마다 악당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다음주에는 언제쯤 주인공이 헐크로 변하는지를 상상하며 남은 일주일을 지워나갔다.

 

시청자는 스스로가 적폐의 대상을 괴력으로 제압하는 헐크이기를 원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는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에 이어 초능력자 돌풍을 일으킨다.

 

당시 미국산 방영물의 범람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20세기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화살표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향한다. 1970년대 독재정권은 반일감정을 정치도구로 적극 활용하면서 대중문화의 촉을 미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무려 87부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시청자는 액션드라마를 보면서 두 가지 만족감에 빠져든다. 첫째는 드라마의 현실성이다. 제작진은 시청자와 수평적 교감이 가능한 사실적인 줄거리와 인물을 배치한다. 둘째는 드라마의 환상성이다. 제작진은 초현실이라는 마취제를 시청자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지금까지도 현실성과 환상성은 방송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인자이다.

 

이러한 두 얼굴을 가진 존재는 드라마 바깥세상에서도 버젓이 존재한다. 문제는 헐크에 버금가는 힘을 이상한 방향으로 소진한다는 데 있다. 먼저 패권주의국가이다.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가 예다. 회의 결과 향후 5년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대한민국을 신탁통치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일본이 떠난 자리에 명함만 바꾼 강대국들이 과실을 따먹겠다는 의도였다. 폭력적인 신탁통치안은 대한민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다.

 

다음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다국적기업이다. 저렴한 인건비를 착취하려고 개발도상국에 전진기지를 차리고 산업혁명시대에 버금가는 살인적 노동을 강요한다. 산재사고나 노조설립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생각이 없다. 만화 <송곳>에 등장하는 프랑스기업의 행태를 보라. 20세기 초반 중남미의 경제적 착취, 내정간섭, 분쟁조정을 일삼던 미국산 다국적기업 UFCO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권력자의 두 얼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국회의원, 부패언론인, 재벌, 정치검찰이 단체로 등장한다. 마치 김지하의 저항시 ‘오적’을 스크린에서 재현하는 분위기다. 이들 간 물고 물리는 암투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큰 그림은 정치인이라는 권력의 피조물이 만들어낸다. 이를 측면 지원하는 내부자는 부패언론인과 재벌이다. 뒤처리는 정치검찰의 몫이다. 대형사고가 터지거나 위기에 몰리면 순서가 뒤바뀌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일도 빈번하다.

 

소개한 이들의 표적은 권력으로부터 멀리 위치한 소시민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소시민이란 강대국의 입김이 멈추지 않는 지정학적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외부자들이다. 중산층 붕괴, 빈익빈 부익부의 단초인 신자유주의와 다국적기업의 희생자인 동시에 내부자들이 배후조종하는 권력의 피해자다. 게다가 정경유착을 선호했던 최고권력자가 조성한 불공정사회라는 그늘에 가려진 미약한 존재다.

 

분노공화국, 분노조절 장애라는 사회현상은 대한민국이 걸어온 부침의 역사를 방증하는 사례다. 여전히 두 얼굴만으로 버티기 힘든 세상이다. 헐크는 사회적 분노의 상징이다. 하지만 분노의 대상은 미국 사회만을 위협하는 존재에 그친다. 애석하게도 한국 사회를 분노의 막장으로 몰아넣은 적폐의 주역들은 드라마의 소재가 아니었다. 이를 한국에서 영화화한다면 제목은 <세 얼굴을 가진 사나이>가 적당할 것이다. 감독은 장준환, 주연은 마동석, 시대적 배경은 2016년 대한민국 겨울로.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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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