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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이 오면 만개한 꽃들만큼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음악회가 한창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음악회를 골라 다닐 수 있을 만큼 주제와 내용도 다양하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개성 있는 젊은 연주자들 덕에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는 듯 보인다.

 

이런 국내 상황과 달리 이미 최고 전성기를 맛본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오래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젊은층이 유입되지 않는 클래식 청중의 고령화, 부유층을 위한 음악이라는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시급했다. 2002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청소년 프로젝트였음은 잘 알려진 얘기다. 안무가 로이스터 말둠과 함께 베를린의 청소년 250명을 데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 건 그중 하나다. 소외계층 아이들이 5주간의 연습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리듬 이즈 잇>은 클래식 음악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의 성공 사례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리듬 이즈 잇> 한 장면.

 

19세기 유럽 근대사회의 산물인 음악회장 문화는 20세기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공연과 음반 산업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클래식 음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베를린 필은 ‘디지털 콘서트홀’을 열어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을 끌어들이고, 유명 오페라 공연들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며, 심지어 젊은이들이 가는 클럽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소셜미디어가 음악가와 청중의 소통을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존재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모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2016년 봄 뉴욕대학교의 국제 고등연구소는 세계 음악계 주요 인사 22명이 참여하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에사 페카 살로넨,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작곡가 진은숙 같은 음악가와 세계 주요 음악단체장, 교육기관장, 학자와 비평가 그룹이 3년간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진단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할 것이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처한 현재 모습을 성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없애고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구가 절박하게 대두되고 있는 때에 클래식 음악계는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해방 이후 50년간 클래식 음악은 줄곧 주류사회의 지배 문화로 특권을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역량 있는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하며 향유층도 넓어졌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만연한 가운데에도 기본과 상식을 지키며 힘든 음악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최근 들어 흥미롭고 유의미한 기획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체와 음악가들이 늘어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우호적이지 않음은 여전히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한 공감과 설득이 가능한 순간은 그 음악을 하는 인간에게서 열정과 진심이 전해질 때이다. 그런 순간은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서만이 아니라 섬마을의 회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창작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래식 음악의 앞날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데 위로와 용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희경 음악학자·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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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