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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8일 발효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음악계를 비롯한 공연예술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공연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던 초대권이 많은 경우 이 법에서 금지하는 부정청탁, 나아가 뇌물로 간주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법 시행에 맞추어 어느 공연 기획사가 12월로 예정된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예매 티켓 박스를 열면서 원래 30만원이었던 2층 로열석 좌석 티켓 가격을 2만5000원으로 조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통 두 장씩 제공되는 초대권이 ‘청탁금지법’의 예외조항에 속하는 ‘선물’의 한도 금액인 5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청탁금지법’의 기본 취지는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되어버린 청탁과 뇌물 문화의 척결에 있지만, 동시에 ‘선물’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뇌물의 정반대가 선물이기 때문이다. 뇌물 주기가 대가를 바라며 주는 행위라면 선물 주기는 오직 받는 이의 즐거움만을 상상하며 주는 행위다.

 

 

‘청탁금지법’이 규정하는 뇌물에 대해 우리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면 그만큼 선물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청탁금지법’이 ‘선물’과 관련한 절충적 예외조항을 마련해 두고 있다는 사실은 당혹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적어도 당분간 ‘5만원 한도’라는 제도화된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서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초대권의 현실적 기능에 대한 토론을 통해 법 시행의 세칙을 보완해 나가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와 공연예술계에 요청하는 성찰은 좀 더 근본적인 지점, 이를테면 ‘선물로서의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된다. 음악에서는 선물 주기의 행위 자체가 선물의 내용이 된다. 예컨대 누군가를 위해 진심 어린 노래나 연주를 해줄 때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동시적인 미적 체험이 일어난다.

 

중년 이상의 음악 애호가라면 자신이 소장한 LP나 CD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여 편집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누군가에게 선사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물 주기의 체험 역시 상대방의 음악 청취에 대한 행복한 상상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녹음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며 선물을 받은 이가 그 음악을 재생하여 듣는 시간까지 이어진다. 요컨대 음악 선물이란 사물의 증여라기보다는 미적 즐거움의 공유이며, 거기에는 반드시 선물 주체의 미적 참여가 포함된다.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음악을 선물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는 선물 행위의 본성은 자본주의적 경제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의 경우 지극히 사적인 친밀성의 영역을 제외하고 공적 영역에서는 이러한 선물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인정했다. 그러한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는 복지 시스템이나 기부 문화가 선물을 대체했다.

 

자본주의 발전 속도와 부실한 사회 시스템 사이의 불균형이 빚는 문화지체 현상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한국사회는 사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여전히 선물 주기가 가능하다고 믿어 왔던 것 같다. 주면서 즐거운 그 무엇이 공적 관계 속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 애처롭기까지 한 믿음, 그 빛바랜 선의를 가리키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초대권’이다.

 

‘선물’에 대한 아도르노의 사유를 분석하는 강의 노트에서 철학자 김진영은 다음과 같은 냉소적 언사를 주석처럼 덧붙이고 있다. “선물 주기는 뇌물 주기의 행위 속에서만 그 잔재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상사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바로 그 물건을 찾으려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아집을 일찍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품어본 적이 있었던가?”

 

같은 맥락에서 초대권은 음악 선물에 대한 부정적 잔영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음악 선물하는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공유’의 가치가 중시되는 새로운 음악 매체 환경 속에서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최유준 전남대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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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