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은 음악들 중 평론가로서 반드시 거론해야 할 곡은 방탄소년단의 ‘Fake Love’겠지만 애호가로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음반은 김사월의 <로맨스>였다. 나온 지 몇 달이 됐지만 이야기하기에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가 넘어가기 전 만나야 할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마음으로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이 음반을 위해 할애하고 싶다. 연말에,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 더욱 그러고 싶어진다.

 

2014년 김해원과의 듀엣 앨범 <비밀>로 데뷔한 김사월은 2015년 솔로 데뷔 앨범 <수잔>으로 하나의 지평을 열었다. 방구석의 짙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디단 설탕맛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20대의 중후반을 통과하는 시기, 김사월은 포크의 본래 모습을 일깨웠다. 아름답고, 신비하며, 몰입하게 하는 20세기 중후반의 포크를. <비밀>과 <수잔>은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팬층을 형성했다. 베스트셀러는 아닐지언정 스테디셀러로 남을 만한 책과 같은 위상을 안겨줬다.

 

2017년 라이브 앨범에 이어 공개한 두번째 앨범 <로맨스>를 들으며 나는 작게 감탄했다. 커리어를 하나씩 쌓을 때마다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서다. 이 앨범은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호르몬 폭발의 순간도,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통곡의 바다도 이 앨범에는 없다.

 

<로맨스>는 보다 날카로운 지점을 세밀하게 짚는다. 누구나 언젠가는 연애를 한다. 연애란 관계의 가장 깊고 지독한 형태다. 이유 없이 빠져들고 이유를 거쳐 멀어진다. 어떤 연애는 결국 끝난다. 이성과 상식이 좀처럼 개입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이성과 상식으로 어찌할 수 있는 관계라면 덜 힘들고 덜 달콤하다. 만취하여 노래방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들은 사실 현실의 과장 아닌가. 그런 것도 통속의 미덕이지만 <로맨스>는 통속의 전형을 비켜 나간다.

 

김사월은 <수잔>에서 수잔이라는 여성의 생각과 생활을 하나의 스토리로 풀어냈었다. 보다 많은 공감의 지점이었다. 그녀는 <로맨스>에서 다시 한번 앨범 속 12곡의 노래들을, 서로 연결되는 각자의 챕터로 풀어낸다. 이 앨범의 등장인물, 혹은 화자들은 온전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결핍이 서로를 끌리게 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멀어진다. 질투한다. 증오한다. 사랑을 통해 결핍을 채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결핍은 결국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결핍이다. 잠들어 있던 본연의 결핍이 다시 자라나는 순간, 우리는 혼자로 회귀한다. 그래서 많은 로맨스란 결국 허무의 발라드가 된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모습은, 오히려 연애에서 오롯이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로맨스>는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사실적 통속이다.

 

이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김사월은 탁월한 가사와 그에 꼭 들어맞는 음악으로 표현해낸다. 단출한 포크에서 전작에서 만날 수 없었던 록적인 편곡까지, 각각의 챕터에 어울리는 소리들로 감정의 풍경을 드러낸다. 선명히 들리는 발음은 몰입을 돕는다. 미술을 전공하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에게 국문학 수업을 들었던 20대 초반의 경력 때문일까? 김사월은 ‘심상’과 ‘표현’ 그리고 ‘소리’를 모두 갖춘 극히 예외의 뮤지션이다. <로맨스>는 <수잔>으로 받았던 관심이 결코 거품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이 앨범을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 앞으로 사랑할 사람들, 지금 아파하는 사람들, 앞으로 아파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잔인하지 않은 공감의 시간이 될 것이다.

 

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여느 때처럼 한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한 후 절절하게 이별한 이야기는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뉴스 바깥의 이야기들이 모여 세상의 결은 단단해진다. 뉴스 바깥에도 세상이 있듯, 차트 바깥에도 음악은 있다. 걸그룹의 음악에서는 만나기 힘든, 만남과 이별의 음악이 있다. 송년회 귀갓길처럼 쓸쓸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음악이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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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