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봉한 프랑스 영화 <라 멜로디>는 중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파리 변두리 초등학교의 임시 강사로 부임해 천방지축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함께 변화해가는 내용을 다룬다. 클래식이라곤 접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처음 만져보는 바이올린으로 몇 달 후 콘서트홀 무대에서 ‘셰에라자드’를 연주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이 그의 과제. 연주자로서의 삶 외에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 없던 음악가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점차 행복감을 느껴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영화 <라 멜로디> 스틸 이미지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오케스트라 클래스’다. 빈민층 아이들에게 악기를 제공하고 오케스트라에서 합주로 배우며 이를 무대에서 발표하는 것.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널리 알려진 후, 오케스트라 교육은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개인 레슨이 아닌 합주 수업에선 실력이 조금 나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흔하다. 티격태격하던 아이들이 연주회를 앞두고 아파트 옥상에 모여 자발적으로 함께 연습하는 장면도 단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무대에 서야 할 때 아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 애쓴다.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오케스트라가 아이들과 지역사회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거라 확신했다. 처음부터 오케스트라에 속해 배움으로써 아이들은 배려와 협동심을 체득하고, 책임감과 자존감을 키우며, 소속감과 성취감을 얻는다. 엘 시스테마의 교육은 훌륭한 음악가를 만드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지 않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며, 그 과정에서 가족과 지역공동체도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은 수십년간 축적된 엘 시스테마의 경험과 실천을 토대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08년 국내에도 소개된 후, 음악으로 아이들과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가슴 뛰었던 음악가와 예술행정가들이 한국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엘 시스테마의 철학과 비전을 알기 위해 광범위한 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이들의 교육방식을 체험하거나 그곳 대표 강사들을 초청해 워크숍을 열기도 하며, 세계 각지에 각양각색으로 확산되고 있는 엘 시스테마형 오케스트라들과 교류하며 경험을 공유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뿌리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몇몇 활동가들이 얼마 전 ‘사회참여적 음악가(Socially Engaged Musicians)’라는 기치를 내걸고 캠프를 열었다. “음악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청년 음악가들을 위한” ‘SEM 부트캠프’. 현재 정부기관이나 문화단체, 사회복지재단이나 민간의 지원으로 지역마다 많은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제도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해도 결국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현장에서 가르치는 음악가들이다. 이들에겐 단순히 악기지도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역량과 리더십이 요청된다. 캠프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음악가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3일간의 일정에 아동청소년 및 사회와의 관계, 음악가의 기업가정신 같은 내용이 포함된 건 그 때문이다.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한화청소년오케스트라’ ‘올키즈스트라’ ‘꿈의 오케스트라’ 등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분들의 생생한 경험담은 힘든 교육 현장에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음악가가 적지 않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엘 시스테마 교육은 음악을 통한 사회적 공감과 실천이고, 지역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다. 캠프 주최자들은 청년 음악가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역할과 방식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보자 제안한다. 사전 면접을 거쳐 캠프에 참가한 청년 음악가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이들의 활동이 음악계의 작은 변화를 추동해내며, 클래식 음악가들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 속 음악가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질 때 클래식 음악의 사회적 존재 이유도 분명해지지 않겠나.

 

<이희경 음악학자·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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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