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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실종됐다. 모두가 알다시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이다. ‘그래도 설마 그랬을 리가’라는 의심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뉴스에 의해 상상 그 이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매주 한 차례씩 세 번이나 카메라 앞에 서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은 사태를 진정하기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프로판 가스통을 투척하는 꼴이다. 촛불은 꺼지기는커녕 주말마다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헌법을 참호와 방패 삼아 버티겠다고 선언했다. 이러다간 정말 가족, 친구들 송년모임을 광장에서 하게 생겼다. 아니, 신년모임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회사원들이 빠져나간 주말의 광화문 식당가는 보통 영업을 하지 않지만, 요즘은 토요일 저녁 한 시간씩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는 게 예사다.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광화문에 온 국민이 몰려 따뜻한 밥 한술을 먹으며 상권 활성화에 불을 지피니 이것이야말로 국민화합이요, 창조경제를 이루는 ‘일타쌍피’의 심모원려라는 실없는 생각도 들곤 한다.

 

실종된 건 연말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대형 백화점 등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 문구와 함께 성탄 소품들을 매년 그렇듯 설치했지만 이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한창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기 시작할 때임에도 우리의 귀엔 ‘아침이슬’ ‘상록수’ 같은 광장의 노래들이 연말의 주제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캐럴이 들리지 않은지 오래됐지만 올해는 유독 심하다. 시국이 이 모양이다보니 머지않아 대한민국 상공을 찾아 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이해해주시겠지만.

 

경향신문과 씨채널방송, 아가페문화재단, 백석예술대학교가 공동 주최하고 서울시와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하는 ‘2016 서울 크리스마스 페스티벌(SCF)’이 개막한 12일 시민들이 청계천에 설치된 화려한 조명을 구경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그래도 캐럴이 없어 아쉽다.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틀 수가 없어져서다. 얼마 전 3년 가까이 운영에 참여하던 공간의 문을 닫았다. 술은 팔지만 회원제 공간이다보니 일반 술집이나 카페에 비해 훨씬 커뮤니티적인 분위기였다. 모든 커뮤니티는 처음엔 대부분 남으로 시작해서 친구가 된다. 딱히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늘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관계가 누적되다 보면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명절 때 차례나 세배 같은 요식 행위를 마치고 모여 함께 만두를 빚어 국을 끓여 먹는다든지, 자체적인 벼룩시장을 연다든지, 잘 알지 못하는 밴드의 공연도 ‘우리 공간’에서 열리니 티켓을 사서 열광적으로 관람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닭살 돋는다’는 생각과 함께 한 가지 문구를 떠올리곤 했다. 가족 같다고. 가족이란 때때로 피곤하다. 마음에 없는 대소사를 챙겨야 하고, 익숙해지지 않는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개인의 욕망과 최소 사회 단위의 의무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겪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감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 공간에서 부대낀다는 유대감, 어쨌든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들은 단순히 혈연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미덕이다. 그 미덕에서 의무만 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3년 남짓, 그 안에서 때때로 그런 작은 바람이 이뤄졌던 것 같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면 더욱 그랬다.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을 마다하고 모두 모여 왁자하게 놀 때면 특별한 정찬이나 이벤트가 필요 없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조차 잘 다루지 않는 대가족의 이상향, 즉 <전원일기>에서 볼 수 있던 정취의 아스라한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다. 그럴 때 트는 캐럴은 호객 행위로 트는 상점의 그것과는 다르게 들렸다. 빙 크로스비의 ‘실버벨’에는 진심어린 온기가, 머라이어 케리의 노래에는 어설프게나마 합창하고 싶은 설렘이 깃들었다. 사회적 지위와 격리된 사생활을 내려 놓은 채 얽히고 얽힌, 관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간의 문을 닫았기에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게 아쉬울 뿐이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는 토요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도 광장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캐럴 한 곡 합창했으면 한다. 정부도, 재벌도 주지 않는 온기를 그래도 광장의 우리끼리 서로 나누고 있다는 기분은 제법 그럴싸할 것이다. 그 따뜻한 기분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는 잠깐의 연말 및 성탄 선물이 되리라.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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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