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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 한국외국어대 교수·문화연구


나는 김기덕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거의 스무 편에 달하는 그의 영화들도 좋아하지 않기에 그의 작품세계는 영화 팬인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섬>(2000)과 <나쁜 남자>(2001) 이후 10년 넘게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서 대다수의 관객들이 느끼는 아득함과 왠지 모를 그 기분 나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나쁜 남자>에서처럼 그의 영화가 드러내는 반여성적인 태도와 폭력적인 세계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 솔직히 얘기하면 ‘거슬려서’였다. 


 개인적으로는 이창동 감독의 <시>(2010)가 1999년 한국영화의 중흥기가 시작된 이후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이창동이야말로 현재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의 대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쭙잖은 영화 몇 편 만든 감독들에게 함부로 작가의 칭호를 부여하는 한국영화판, 영화평론가들, 언론의 경박한 행태를 난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십 수 년 넘게 동어반복만 하고 있으나 영향력 있는 소수의 외국 평론가 덕에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도 있고, 영화 몇 편 만들어 보지 않고 유명 외국 영화제에 초대받고 수상도 함으로써 하루아침에 스타 감독으로 부상한 이도 있다. 이런 감독들에게 ‘작가(auteur)’의 칭호라니? 외국 같으면 수 십 년에 걸친 필모그래피를 쌓아야 얻을까 말까 한 작가주의 감독이란 칭호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발한다.





이런 이유로 며칠 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체 베니스나 베를린이나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국내 관객들, 평론가들, 투자자들이 놓치고 있는 어떤 것을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정녕 작가주의 감독이라면 과연 어떤 작가주의 감독일까 라는 새삼스러운 의문이었다. 우선 <피에타>를 보러 갔다.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김기덕 영화치곤 의외로(?) 볼만하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집중 배치된 잔혹 코드들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사실 그 정도 수위는 유럽 예술영화나 <레지던트 이블>류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이미 길들여진 관객이라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정도다. 실제로 내가 영화를 본 곳은 신도시의 한 영화관이었는데 관객의 대부분은 주부들이고 노인들도 많았지만 거친 표현의 수위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피에타>를 보고 또 확인한 것은 김기덕은 분명히 작가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와 화법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한국영화계의 아웃사이더이자 영원한 마이너리티다. 초등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의 전부인 그가 몇몇 특정 대학 출신들이 지배하는 영화판에서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몇 년 전 한 TV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그의 가족사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 서먹한 권위적인 아버지 앞에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앉으며 난감해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김기덕 영화는 해외영화제용’이라는 비아냥에 대해 “영화제에 갈 수 있으면 가보라고 해요!”라고 당당하게 외칠 줄 아는 자신만만한 감독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운 그의 가족사, 감독으로서의 성장사는 영화 곳곳에 그 흔적을 드러내며 작가로서 뚜렷한 표식을 남기는 데 기여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그리고 감독인 김기덕 스스로도 <피에타>는 자본주의와 도덕성과 구원에 관한 영화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다른 해석의 여지도 풍부한, 열려있는 텍스트다. 


내게 이 영화는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서울이라는 도시와 청계천이라는 노동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자 기록이자 헌사이며, 의외로 ‘가족의 가치’를 숭고함(sublime)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매우 보수적인 텍스트로 읽힌다. 어떤 독해가 더 그럴듯한지는 독자들이 영화관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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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