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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틀맨이란 모름지기 나를 내세워 요란스럽지 않아야 한다. 정진영은 그런 면에서 담백하다. 자신에겐 고집스럽지만 남에게는 무른 듯 맞춰 나가기 선수다. 평소 입고 다니는 의상은 모두 아내가 사준 그대로다. 배우라면 자신의 개성을 피력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맞추는 걸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는다. 아, 생각해보니 남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는 개성보다 맞춰가기를 잘해야 하는 게 옳구나.





중심을 잡을 줄 아는 배우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한 정진영(49)은 어젯밤 잠을 설쳤다며 커피를 마시고 싶어 했다. 누군가 타다 줄 겨를도 없이 스스로 척척 타 마시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 보인다. 그는 스케줄 관리자도 없고 흔한 운전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닌다. 술 약속이 있는 날은 가볍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불편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재미없다고 말한다. 정진영은 허식을 모르는 사람이다. ‘천만 관객 배우’라는 것, ‘서울대 학력’이라는 것. 그에게는 거추장스럽거나, 별 의미 없는 이력이다.


“나이 오십이 다 돼서 대학 얘기하는 건 좀 우스워요. 배우에게 필요한 이력도 아니고요. 또 흥행은 관객이 만드는 것이지 우리의 기록이 아니라 생각해요. 배우가 흥행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촬영할 때 열심히 하는 거죠.


흥행을 목표를 잡고 연기한다면 작업이 괴로워진다. 한국 영화 역사상 천만 관객의 성적을 올린 영화는 총 여덟 작품이다. 그중 두 작품이 그의 영화다. ‘왕의 남자’와 ‘7번방의 선물’.


“자고로 즐겨야지 결과가 좋은 거 같아요. 고시 공부도 그렇잖아요. 목표를 잡아서 공부했는데 합격을 못하면 몇 년이 저주스러운 것처럼. 어떤 작품이 흥행이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과정을 즐겨야지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 시간이니까.”


‘7번방의 선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가 예뻤기 때문이다.

“제 영화 중에 ‘날아라 허동구’라는 작품이 있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인데 흥행에는 실패했어요. 부정(父情)을 다룬 스토리가 비슷하더라고요. 전작에 대한 짠한 마음도 있고 해서 이번 영화에 출연하게 됐죠.”


그는 특별 출연이었지만 영화 속 존재감은 남달랐다. 그가 교도관 과장 장민환 역에 캐스팅되면서 애초 시나리오보다 분량이 더 많아지고 선이 분명해졌다.


“마치 동화 같은 판타지에 유일하게 현실감을 불어넣는 역할이에요. 영화에서 막 앞서 나가는 역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중심을 잡는 역할이었잖아요. 원래 그런 역을 좋아합니다.”


작품 흥행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지만 정작 그는 마음에서 역할을 떠나보내고 비우는 중이다. 작품이 하나 끝날 때마다 늘 하는 일이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말한다.





“작품을 하는 것은 일종의 연애와 같아요. 연애를 뜨겁게 하다가 순간 ‘안녕’ 하고 헤어지는 거죠. 예전보다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빨라졌어요. 실연도 자주 하면 담담해지잖아요. 아닌가요?”


낯선 것을 보고 듣다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렇게 현재의 나를 비운다. 그래서 그가 이용하는 수단은 여행이다.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가족과 함께 가지 않는 이상 휴양지는 별로예요. 여행하다가 괜찮은 곳을 발견하면 나중에 가족도 데려가고요.”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1주일을 보내다 가족을 불렀다. 식구들과 올레길을 걷기도 하고 휴식을 취한 뒤 돌아왔다.


“이제 혼자 다니는 여행이 심심하더라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가족을 찾게 돼요. 아들이 중3인데 한창 어리고 예쁠 때 바빠서 집을 많이 비웠어요. 요즘 생각하면 좀 억울해요.”


어느새 아들은 아버지보다 무거운 걸 잘 드는 듬직한 남자가 돼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 예술가 기질이 보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이쪽이 아닐 거예요. 저 역시도 원래 배우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쪽(예술) 계통이었어요. 근데 우리 아들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런 느낌은 아직 못 받았어요.”


정진영은 강요하지 않는 아빠다. 절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아들은 그와 아내 딱 반씩 닮았다. 그리고 플러스알파가 있을 것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정진영식 맞춰가기

스크린, 브라운관, 무대… 정진영은 어디에 올려놔도 어울리는 배우다. 2011년에는 KBS-2TV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도전자’의 MC를 맡아 하와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MBC-TV ‘나는 가수다’ 가왕전 특별 MC를 맡았다.


“과거에는 연기 외에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서 나를 지켰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던 것만 하고 살면 인생이 재미없겠다 싶더군요. 이제는 MC도 해보고 예능 출연도 해보며 그렇게 한 번씩 삶을 흔들어놔야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하는 것을 권하고 싶어요.”

무엇이든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개발하고 나가야 한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제 친구들을 보면 참 고민들이 많더라고요. 다들 새로운 것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럴 수만 있다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경험은 어설프고 처음에는 몸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이야기할 수 없다. 맛이 다른 것이다. 각각 나름의 질서가 있고 리듬이 있다.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그 리듬을 타고 이야기해야 한다. 모든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간다고 여기면 그건 바보다.


“저는 영화를 찍을 때 감독에게 의견을 잘 내는 편이에요.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건 당연해요. 배우는 인물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고 감독은 영화 전체를 보는 사람이죠. 제가 충분히 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최종적으로 감독의 말을 따라요.”



그는 자유롭고 합리적이다. 그에게 주연배우란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배역이 크고 작은 건 없어요. 배우가 부끄러워해야 할 말은 ‘그 배역은 다른 사람이 했어야 한다’라는 평가예요. 내가 그 역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제일 좋은 건 ‘정진영이 해서 참 괜찮았어!’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정진영은 한 번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완벽한 연기라는 경지와 오차나 간격을 좁혀나갈 뿐이다.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면 부끄럽죠. 늘 그래요. 그 아쉬움을 다음 작품에서 커버하는 거지요. 만족할 만한 연기는 나에게 가능치 않은 경지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배우가, 스스로에게 감탄하기 시작하면 ‘큰일 난다’고 봐요.”


현재 휴식을 취하며 ‘비우는’ 작업에 한창인 그는 올여름이면 다음 작품에 들어간다. ‘현장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존재하는 것.’ 욕심 따윈 필요 없는 배우 정진영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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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