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많은 이들에게 ‘최종훈’이란 이름 석 자는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라면 분명 반가워할 것이다. MBC-TV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자주 목 놓아 부르던 그 ‘최코디’이니 말이다. 특출한 예능감을 자랑하며 얼굴을 알렸던 그는 요즘 친숙한 호칭을 내려놓고 ‘배우’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활동 무대는 달라졌지만 친근하고 소박한, 그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 그대로.




무르익은 진심이 가져다준 기회


국내 최초 ‘군디컬’ 드라마(군대에서 경험하게 되는 소소한 상황을 메디컬 드라마처럼 비장미 넘치는 전개로 풀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 ‘푸른거탑’의 인기가 심상찮다. 지난해 tvN ‘재밌는 TV 롤러코스터2’의 한 코너로 방영되던 ‘푸른거탑’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지난 1월 말부터 60분물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이례적인 케이스로,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뜻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분가’ 이후 더욱 흥미진진해진 이야기 전개와 디테일한 묘사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군대 내무반에서 펼쳐지는 전우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푸른거탑’이 이토록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보편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재치 넘치는 패러디와 실제 군 생활을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에 있다. 실감 나는 에피소드와 특색 있는 여섯 캐릭터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전역한 예비역들과 현역 장병들은 물론이고 언젠가 입대해야 할 예비 군인들 가까운 사람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혹은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까지 전 국민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게다가 틈만 나면 무용담처럼 등장하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진저리치는 여성 시청자들까지도 포섭했다.


사실 ‘푸른거탑’의 선전을 견인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연기자들에게서 나온다. 배우들은 각자 독특한 캐릭터의 특색을 맛깔나게 살려낸다.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섯 전우들은 우리 주변에서 꼭 한 명씩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겹치지 않고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다. 최종훈(35)을 비롯해 김재우, 김호창, 백봉기, 정진욱, 이용주는 마치 실제처럼 끈끈한 전우애를 자랑하며 열연을 선보인다. 덕분에 스타급 배우나 인지도 높은 인물 없이도 이처럼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이가 바로 말년 병장 역의 최종훈이다. 제대를 코앞에 둔 말년 병장 최종훈은 입버릇처럼 “말년에 …라니”를 내뱉으며 각종 훈련과 작업에서 빠지기 위해 온갖 꾀병과 요령을 피운다. 하지만 매번 발각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진지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큰 웃음을 이끌어낸다. “통증이 대뇌의 전두엽까지”라는 대사는 어느덧 유행어가 됐다.


“처음엔 저도 작가님께 ‘전두엽이 어디에 있는 거예요?’ 하고 여쭤볼 정도였는데, 이게 이렇게 유행어가 될 줄은 몰랐네요. 대사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년 병장의 심각한 모습이 역설적으로 재미있게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제 경험도 떠올려보고 제작진이나 동료들과 의견도 조율하고요. 정말 최대한 진지하고 비장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죠.”


‘깔깔이’와 한 몸이 돼 종일 만사 귀찮은 얼굴로 반쯤 누워 있을 것만 같은 말년 병장의 이미지를 100% 표현하고 있는 최종훈은 실제로는 육군이 아닌 의경 출신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육군 병장 연기를 위해 온갖 자료를 섭렵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구했다. 특히 군대 관련 한국 영화를 모조리 찾아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군 영화라기보다는 군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전부 봤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 그러다 영화 ‘실미도’를 보는데 설경구씨의 비장한 톤을 차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나오는 임원희씨 캐릭터도 눈에 들어왔고요. 작가님께서도 대본에 ‘오버스러울 정도의 정극 연기’가 필요하다고 써놓으셨거든요. 사실 원래 저는 말년 병장 역으로 캐스팅된 것도 아니었어요. 원래 맡았던 박성호 선배님께서 일정 문제로 빠지시면서 제게 기회가 온 거예요.”


기회는 운 좋게 찾아왔지만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하고 기다려온 노력의 힘이었다. 한 줄 대사밖에 없는 단역으로 출연하기로 했지만 대본 전체를 꿰고 있었고, 나름 다른 캐릭터에 대한 연구도 해보았다. 덕분에 대본 리딩에 참석하지 못한 박성호를 대신해 그가 대본을 읽었을 때 흡족해했던 관계자들이 사정상 공백이 생기자 역할을 맡기게 된 것이다. 지금의 말년 병장 캐릭터는 결국 처음부터 그가 만든 모습 그대로인 셈이다.


“굉장히 운이 좋았죠. 한편으로는 딱히 같이 연습할 것도 없는데 대본 리딩에 참석하게 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갑작스럽게 역할이 결정되고 나서는 ‘해내실 수 있습니다’라며 용기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그래서 더욱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촬영 때 리액션 하나라도 최선을 다하게 되고요. 제게 기회를 주신 분들도 그렇고 저 스스로도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을 불태워야겠단 결심을 했죠(웃음).”


그는 노력을 통해 인생의 큰 기회를 잡은 데 대해 그저 감상에만 젖어 있지 않고 또 다른 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방송 직후 쏟아진 ‘의외의 발견’이란 찬사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시청자들의 관심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도 지금의 결과는 긴 시간 착실하게 간직해온 꿈과 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오랜 방황 끝 선택, 그리고 다시 시작


개그맨 정준하의 매니저로 방송에 간간이 얼굴을 내비쳤던 그의 원래 꿈은 연기자였다. 학창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을 잘 웃기는 것으로 유명했고, 영화배우 박중훈을 보며 ‘꼭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바람을 품었다.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박중훈은 그의 우상이자 롤모델이었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밝은 웃음을 전하는 코미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우선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지만 안타깝게도 떨어졌고, 군 복무 후 잠시 방송국 FD를 거쳐 한 개그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다. 정준하를 만난 것도 그곳에서였다. ‘노브레인 서바이버’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정준하를 도와주기로 하면서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무한도전’에 등장한 뒤로 유명세를 얻으며 주변에서는 예능 활동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바쁘고 또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불편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메말라 있던 가슴속에 불을 지핀 계기는 뮤지컬 ‘라디오 스타’ 출연이었다.


“제가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계시던 준하 형이 본인이 출연하는 작품에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그 작품 배경이 강원도 영월인데, 어느 날 연출자께서 지역 방송국 엔지니어 역을 강원도 출신 연기자에게 맡겼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신 거예요. 제가 주문진 출신이거든요. 합류가 결정되고 나서 주어진 이틀 동안 대본을 독파했어요. 아무래도 매니저 하던 사람이 갑자기 역할을 맡았다는데, 기존 배우들이나 스태프 입장에서는 못 미덥고 불편해하실 수 있잖아요. 제 입장에서도 어렵고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연습해서 드라마 리허설에 들어갔어요. 그때 다들 ‘너 어디서 연기 배웠니?’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아, 내 연기가 낙제점은 아니구나’ 싶어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요.”




이후 언제나 ‘잘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베테랑 배우들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연기를 보며 자신을 고쳐나가기도 했다. 많이 부족함을 알기에 필사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했다. 고맙게도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이 있어 차츰 자신감도 생겼다. “얼른 매니저 일 그만두고 연기해요”라던 동료 배우의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뿌듯하게 남아 있다.


 

“제가 정말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확실히 깨달았어요. 아직도 첫 무대가 잊히지 않아요. 등장하고 ‘탁’ 조명이 들어오는데 앞이 까마득해지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무대를 내려올 때 그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고요. 결국 그 작품을 지방 공연까지 10개월 동안 소화했어요. 그러는 바람에 매니저 일을 제대로 못해서 준하 형이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도 생기고 여러모로 힘들어지셨죠.”


서운하거나 불편한 점이 많았을 텐데, 정준하는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그의 꿈을 지지해줬다고 한다. 매니저 일을 할 때도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면 항상 ‘매니저 일을 하고 있지만 꿈이 연기자인 제 후배예요’라고 그를 소개했고, 두루두루 신경 쓰며 챙겨줬던 사람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폐를 끼치는 것 같았고, 또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별을 선택하게 됐다. 오랜 방황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형은 제 꿈을 존중하고 저를 정말 단단하게 만들어주신 분인데, 저는 좋은 영향은커녕 불편하게만 해드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시기, 제 정체성에도 혼란이 왔어요.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혼란에 빠져 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묻더군요. ‘당신 인생 목표가 원래 뭐였어?’라고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아무 목표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매니저 일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준하 형은 ‘처자식까지 있는 애가 아무 대책도 없이 그만두면 어쩌느냐’고 만류하셨지만 저는 결심이 확고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어느 작품에서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생활 연기자


큰 소리를 치며 뛰쳐나왔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방법도 막막했다. 얼굴이 잘생긴 것도, 경험이 많은 것도, 제대로 기본기를 배운 것도,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닌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는 듯 보였다. 처음 6개월가량은 갈팡질팡하며 그야말로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제대로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닌 꿈을 계속해서 좇을 수 있을지 고민에 휩싸여 매일 무의미한 하루를 살았다.


“가족을 보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천진하게 뛰어노는 두 아이를 보면서 ‘내가 가장으로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고, 또 저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그런 저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 바로 아내예요.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겠냐’라는 제 말에 ‘걱정부터 앞세우지 마. 내가 일하고 또 당신이 열심히 하는데 뭐가 걱정이야. 나는 오히려 당신이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해’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울컥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때부터 마음을 추스르고 대학로에 나가서 예전에 알던 배우들을 만나 배우기도 하고 차근차근 다시 걸음을 옮기게 됐죠.”


그리고 몇 달 뒤, 힘든 시간에 마침표를 찍듯 ‘롤러코스터’가 찾아왔다. 지인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제작진이 출연을 제안해왔고, 꿈과 목표에 ‘올인’하겠다는 결심 이후 힘차게 첫 걸음을 떼게 됐다. 물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하루하루 쓰여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특히 인복이요. 시기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려움도 잘 극복하고 기회를 누릴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저를 잊지 않고 좋아해주시는 시청자분들께도 그런 마음이 들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그런 복을 누릴 만큼 인생을 잘 살았나 돌이켜보게 돼요. 그만큼 앞으로 더 성실하고 착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그토록 하고 싶던 연기를 하면서 지내는 일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행복한 요즘이다. ‘푸른거탑’ 촬영이 잡히면 전날 밤부터 가슴이 뛸 정도로 즐겁다. 덕분에 혹한기 훈련을 재현하기 위해 영하 30℃에서 웃통을 벗고 눈밭을 구르는 일정마저도 웃으면서 소화하고 있다.


“저뿐만 아니라 출연진 전부가 같은 마음이에요. 다들 의욕도 넘치고 똘똘 잘 뭉치는 편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파이팅’하면서 해내고 있어요. 아마도 그런 모습이 화면에 녹아 있어서 시청자들께서 더 좋아해주시는 건 아닐까 싶어요. 유격 훈련이며 체조며 전부 다 실제로 하거든요. 그리고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저보다 더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해요. 아내는 제가 즐겁게 집을 나서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고 해요. 우리 아이들은 요즘 길에서 군복 입은 아저씨만 지나가면 ‘아빠’ 하면서 쫓아가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어서 참 좋네요.”


그는 시작이 늦었다고 조바심 내거나 당장 뭔가를 얻기 위해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매달리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냥 변함없이 지금의 마음 그대로 하나하나 밟아나갈 거라고. 오랜 기간 품어왔던 꿈이기에 오히려 대하는 자세는 간결하고 담백할 수 있는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작든 크든 어디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라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저는 톱스타가 되거나 인기를 얻는 건 바라지 않아요. 다만, 작품 안에서 꼭 필요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요즘 가장 기분 좋은 말이 ‘너 진짜 말년 병장 같아’거든요. 그렇게 앞으로도 쭉 주어진 역할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지켜봐주세요.”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