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팝 칼럼니스트)







록은 어떤 음악인가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쉬운가?

근래 차트에 오르는 곡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곡들을 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실, 현실적으로 접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록 음악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일부는 기타, 드럼 등의 연주자들과 보컬리스트가 있고, 공중파에서 쉽게 듣기 어려운 강렬한 음악을 하는 경우를 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록은 이미 전 지구적인 예술 형식의 하나이고, 세계화는 이러한 ‘외국 태생의’ 문화를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최초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록 음악은 음악 자체로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양상의 문화적 맥락의 한 요소의 의미를 가져 왔다고 생각된다. 음악에 산업의 산물이라는 점 외의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록 음악은 그 다양한 하위 장르로 인해 악명이 높다. 그런 장르 구분이 일관되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학창 시절, 록을 좋아한다던 몇몇 친구들이 줄줄 외고 다니던 계보는, 록을 좋아한다던 그 친구들마저 위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했을 것임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

물론 앞으로의 글들도 위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록을 정확히 음악적으로 정의내린다는 시도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들의 목적은, 록 음악이 전개되어 온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다.

록은 그 동안 역동적이면서도 다양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 왔고, 그렇다면 그 자화상은 그 많은 스타일과 형식들을 모두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궤적을 어렵게나마 쫓아 가는 것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록 음악의 궤적의 출발점이 될 지점은 로큰롤일 것이다. 사실, 로큰롤이 컨트리 앤 웨스턴과 리듬 앤 블루스의 결합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그렇다면 로큰롤이 나타난 것은 대체 언제인가?
물론 이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로큰롤에 대한 일반의 경험은 1950년대에 이르러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냉전의 시대에서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여 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지만, 냉전은 미국 사회의 경직성,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져오게 되었다. 미국 사회의 사회적 모순은 침묵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는 10대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미국적 가치’ 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었고, 급격한 현대화를 이룩한 미국의 자본주의는 학교를 졸업한 경우이더라도, 밝은 직업 전망을 내놓을 수 없었다. 사회는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기술직 근로자 정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흑인의 삶은 더 심각했다. 흑인은 이미 50년대 이전에, 남북 전쟁 이후에도 평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흑인의 문화는 백인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흑인들은 그러한 삶 속에서 블루스(‘blues‘ 는 문자 그대로 슬픈 음악이다)를 만들어 내었고, 남부의 농촌 지방에서 발전한 델타 블루스는 그 형식 자체는 비교적 정형적이었지만, 백인 음악보다 감정의 표현이 풍부했고, 특히나 균등하지 않은 비트의 세분에서 나오는 그루브와, 블루스 특유의 블루 노트는 블루스를 백인 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델타 블루스는 1930~40년대 대공황 시기의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거치면서 도시의 빠른 생활 리듬을 반영한, 더 빠르고 격렬한 음악이 되었다. 텍사스나 시카고, 뉴올리언스 등에서는 이미 티본 워커(T-Bone Walker)나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비.비. 킹(B.B. King), 패츠 도미노(Fats Domino) 등이 로큰롤 이전에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로큰롤이 언제 나타났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미 로큰롤은 흑인 사회에서, 백인 문화와는 구별되는 흑인 문화로서 존재해 왔던 것이다.
로큰롤이 그 탄생시부터 리듬 앤 블루스 자체와 명확하게 구별되어 나타난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차이는, 리듬 앤 블루스는 흑인 청중을, 로큰롤은 백인 청중을 의식한 용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자의 경우로서 가장 로큰롤에 근접한 흑인 뮤지션은 척 베리(Chuck Berry/위 사진)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등일 것이다.
척 베리는 힘 있는 리듬을 바탕으로 해서 시카고 블루스를 로큰롤로 변화시켰고, ‘Maybellene’ 등의 히트곡에서 청소년들의 생활을 다루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리틀 리처드는 광적인 피아노 연주와 당대의 ‘샤우터’ 다운 거친 창법, 인상적인 무대 매너로 이후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Chuck Berry - Johnny B. Goode. 뒤에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등도 커버하게 되는 명곡이다


이와 같은, 라디오에서 들려지는 흑인 음악은 프랭크 시나트라 등의 일반적인 곡들보다 활력이 있었고, 뮤직 비즈니스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백인 중산층 10대들은 당대의 호황에 힘입어 상당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때로는 ‘열풍’ 을 일으켜 부모 세대 이상의 영향력을 보일 수도 있었다. 레코드 시장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구매력을 발견했고, 이젠 이들을 고객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상품이 필요했다. 앨런 긴즈버그나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등이 이미 이 시대의 반항의 상징이 되어 있었고, 로큰롤의 폭발에도 그런 인물이 필요했다.


빌 헤일리(Bill Haley)의 성공은 바로 그러한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빌 헤일리는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50년대 초반부터 리듬 앤 블루스를 컨트리 앤 웨스턴과 융합시키기 시작했고, 1955년 ‘Rock Around the Clock’ 이 영화 ‘Blackboard Jungle(폭력교실)’ 의 사운드트랙에 실리면서 로큰롤 탄생의 주역이 되었고, 이미 30이 되었던 백인 컨트리 가수는 갑자기 반항적인 10대들의 대변인이 되었다. 음악만으로도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면, 정말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진 로큰롤 ‘백인’ 가수가 등장한다면 성공은 확실하다고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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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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