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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다분히 여성취향적인 감성의 소유자죠. 특히 시적인 언어감각은 당대 최고입니다. 이영훈이 없었다면 이문세도 없었을 겁니다”(이문세). “그의 노래엔 상업적 고급성이 아닌 문화적 고급성이 있어요. 어떤 가사와 멜로디를 써줘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줍니다”(이영훈).

 

2001년 3월 경향신문에서 대담을 위해 만난 두 사람이 나눈 덕담이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막강한 문화콘텐츠로 사랑받는 이영훈-이문세 콤비의 노래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84년 가을, 이장희가 운영하던 광화문 랩 스튜디오에 신촌블루스 엄인호, 가수 권인하, 이문세 등이 모여 있었다. 아직은 포니승용차에 기타를 싣고 떠돌던 무명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피아니스트 이영훈이 있었다.

 

 

원래 미대 지망생이었던 이영훈은 스탠드바에서 연주를 하면서 곡을 쓰고 있었다. 이영훈은 엄인호의 권유로 곡을 찾던 두 가수에게 습작을 들려줬다. 잘 알려진 ‘소녀’가 그 곡이었다. 이문세는 첫 곡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문세와 이영훈은 의기투합하여 수유리 자취방에서 라면을 먹어가면서 작업을 했다. 작업을 마무리 지을 무렵 좀 더 대중적인 노래가 필요하다는 주문 끝에 나온 곡이 ‘난 아직 모르잖아요’였다. 85년 11월, 2집까지 무명가수였던 이문세가 낸 3집은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세미트로트곡이나 포크송이 전부였던 가요계에 클래식한 느낌의 팝발라드곡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150만장이 팔렸고,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은 음반사상 최초로 200만장을 돌파했다. ‘휘파람’ ‘광화문 연가’ ‘시를 위한 시’ ‘그녀의 웃음소리뿐’ ‘사랑이 지나가면’ 등 명곡들이 그들 콤비에 의해 탄생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인 이영훈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곡작업을 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커피 40잔, 담배를 4갑씩 피우며 밤을 새웠다. 결국 몸을 망친 이영훈은 지금 세상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정동길을 걷는 이들의 곁에는 그가 늘 함께 걷고 있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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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