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봄날,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 노래가 누구에게나 다 같은 노래일 수는 없다. 이동원의 ‘향수’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월북시인 정지용은 18세 때 이 시를 써서 휘문고보 교지 ‘요람’에 처음 발표한다. 이후 1927년 ‘조선지광’에 공식 발표했다. 고향인 충북 옥천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로 그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일제강점기 채동선이 시에 곡을 붙였고, 그 이후에도 강준일, 변훈 등이 발표했지만 크게 히트하지 못했다.

 

정호승의 시에 곡을 붙인 ‘이별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이동원은 정지용의 시에 매료됐다. ‘향수’를 노래로 만들기 위해 작곡가 김희갑을 찾았다. 그러나 김희갑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곡을 붙이기에 너무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동원의 끈질긴 요청으로 김희갑은 1년 가까이 씨름하여 곡을 붙였다. 그는 도중에 수차례 포기하려고 했었다고 회상한다. 시의 묘미를 노래로 살리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완성된 곡을 받아든 이동원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동원은 당시 서울대 음대 박인수 교수를 찾아갔다. 그에게 듀엣곡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자 흔쾌하게 수락했다. 그러나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엉뚱하게도 그 불똥이 박인수에게 떨어졌다. 당시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국립오페라단 단원으로 활약하던 그가 제명을 당한 것이다. 클래식을 하는 사람이 천박한(?) 대중음악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시가 노래이고, 노래가 시였던 시대가 있었지만 시에 곡을 붙여서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송창식의 ‘푸르른 날’(서정주),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시를 읽다 보면 절로 멜로디가 떠오르는 ‘향수’야말로 시를 살린 명곡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5월이면 충북 옥천 일대에서 정지용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지용제’가 펼쳐진다.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