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과 어슐러 르 귄이라는 낯선 연결고리에 대해 듣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한국 보이그룹의 미국 팝 시장 석권에 대한 수다 끝에 BTS의 뮤직비디오에 영감을 준 것이 르 귄의 단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BTS나 소속사가 직접 그런 내력을 밝힌 것도 아닌데 누리꾼 사이에서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르 귄의 1973년 작품이 BTS의 뮤직비디오 <봄날>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믿음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를 찾아 본 결과 그런 추론은 꽤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르 귄이 작품집에서 밝힌 것처럼 ‘오멜라스’라는 소설 속 지명은 ‘Salem(Oregon)’이라는 도로표지판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그러므로 실재하지 않는 지명이 반복돼 나타나고 축제, 떠남 같은 이미지가 드러나는 영상으로 보건대 그런 추론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20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에 올라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르 귄의 소설 속 ‘오멜라스’는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는 완벽한 이상향이다. 하지만 오멜라스의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은 희생양처럼 비참한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한 아이가 있어야 하고, 그 아이의 존재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만 지속된다.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아이에 대한 부당한 행위에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 대부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메말라간다. 그리고 일부는 오멜라스를 떠나간다.

 

짧지만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이 소설은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도덕론에 관한 글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났으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공리주의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위한 사례로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일부 마니아적인 독자들의 열광으로 익숙했던 르 귄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함께 인터넷이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이슈가 되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심은 BTS와 철학이론을 연계한 인문서적의 출간으로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 책들에 대한 줄 잇는 대출예약에서 알 수 있듯 도서관 이용자의 반응도 매우 뜨겁다.

 

BTS와 관련된 일련의 연쇄적 책 읽기의 반향을 지켜보면서 강박처럼 우리를 몰아대는 ‘책 읽히기’ 전략도 이제는 독서에 대한 엄숙주의 폐기와 함께 새 처방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성인의 40%가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독서실태 조사 보고서가 나오고, 유례없는 서점의 불황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책을 읽게 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어차피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는 체념 섞인 진단에만 익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시대’는 과연 활자를 능가하는 매력적인 매체에 마음을 빼앗긴 독자들의 탓뿐일까? 천편일률적 서평이나 추천도서만으로 독자를 돌아오게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보다는 책 밖의 다양한 관심과 책을 연결해주는 여러 고리들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한 것 아닐까? 어쩌면 잃었던 사랑의 감정을 끌어내는 마법 같은 한 줄의 문장으로 유명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이제 도서관 안내데스크에서 이용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한 줄의 유혹적인 인사말로 변주되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BTS를 좋아하세요?”

 

<송경진 | 마포중앙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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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