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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모처럼 영화를 보았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는, 이미 일본에서는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된 적 있는 <리틀 포레스트>다. 도시 생활에서 좌절을 겪은 청춘이 자신이 자란 시골 마을로 돌아가 1년을 보내는 풍경을 담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음식이다. 원작인 일본 영화는 주위 자연에서 구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종의 자급자족형 삶을 보여준다고도 하지만, 한국 버전에 나오는 영화 속 식재료 중 일부는 서울에서도 일부러 찾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애초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래서 돌아갈 고향도 없고, 돌아가야 빌려줄 논이나 과수원이 있는 부모는 처음부터 갖지 못한 청춘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고 주제가 귀농이니 도시 탈출이니 하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판타지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음식이다. 좌절한 마음을 넘어서기 위해 먹는 음식들, 추억을 빌려와 만드는 음식들. 더러는 혼자 먹고, 더러는 나누어 먹지만 새로운 음식은 없다.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밥으로 지어 먹는다는 것. 그것을 묵묵히 먹어 삼키는 것, 그것이 성장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추억의 음식에 비로소 자신만의 레시피를 덧붙였을 때, 훌훌 떠날 수 있던 것일 터였다.

 

<리틀 포레스트>포스터

 

그런데 어이없게도 나는 <리틀 포레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떠올랐다. <원더풀 라이프>는 사후 세계에 대한 영화이다. 죽은 이들이 이승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자기 인생의 가장 좋았던 기억을 기록하고 떠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전혀 연관되지 않는 영화인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감당하고 거기에서 비로소 출발해보려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의 담담하지만 밝은 웃음을 보면서 나는 그만 아, 죽었구나, 죽음 이후의 환상이구나 혼자 중얼거리고 말았다. 대체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상상을 하느냐는 일행의 힐난을 들었고, 그의 비난은 타당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어떤 불길함에 마음이 아팠는데, 돌아와 생각하니 아무래도 나는 영화 속 그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가 살아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늙어서 혹은 세상을 떠나서 돌아볼 수 있는 기억 속의 세계는 맞을까. 지금 우리 사회의 청춘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우울한 청춘이다. 아르바이트 같은 일자리마저 포함했는데도 사상 최고의 실업률이고, 그마저도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쫓겨난 청춘들이다. 해놓은 것 없는 기성세대에게 착취당하거나 감성팔이당하거나 하는 와중에 부당함을 폭로하면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공작 세력으로 비난 받는다. 이들의 기억 어디에서 사과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내일의 꿈을 오늘 미리 가불해 주고, 그 가상의 현실을 당장 오늘의 그것으로 착각하고 즐기게 하여 진짜 현실의 갈등을 잠재워 버리는 말의 요술은 이 섬을 다스려 온 사람들의 해묵은 수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오늘의 삶이라는 것이 늘 힘겹고 짜증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극히 손쉽고 효과적인 지배술의 하나였습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이 문장은 1970년대의 한 섬을 배경으로 한다. 그 섬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섬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제는 진보인사의 민낯을 폭로하며,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한 젊은이를 향해 쏟아진 소름 끼치는 댓글을 읽었다. 드디어 공작이 시작되었다던가.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폭로를 두고 처음 공작 음모론이 제기됐을 때, 나는 그들이 말하는 ‘공작’이란 ‘허위’ ‘왜곡’ ‘조작’의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말은 단지 목적 달성에 대한 훼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천지분간 못하는 이들의 미투 폭로 때문에 촛불로 어렵게 세운 진보정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덜덜 떠는 이들은 ‘고작 이런 일’로 무너질 대의를 걱정하지만, 나는 이런 일로도 타격 받지 않는 ‘그들만의 대의’를 보게 될까 그것이 더 두렵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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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